제주의 아름다움에 가슴 벅차고 질곡의 역사에 눈시울 아린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가슴 벅차고 질곡의 역사에 눈시울 아린다
  • 김동우
  • 승인 2014.11.06 16:01
  • 호수 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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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바다 역사 기행>> 제주도 송악산

▲ 송악산 해안절벽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해안진지가 있다.


제주의 가을은 멀미가 날 정도로 아름답다. 그 화려한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불콰한 기운에 얼굴이 홍조로 물들 것만 같다. 제주는 어딜 가나 수려한 풍경으로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달달한 바람과 담백한 빛은여행의 기분을 북돋아 주기 충분하다. 산방산에서 송악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린다. 이 길은 볼 거 많은 제주도에서도 특히 아름답기로 입소문이 자자한 길이다. 시원한 바닷바람 뒤에서 형제섬이 길의 풍치를 더해준다. 형제섬은 바다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새끼섬과 암초들로 이뤄져 있어 보는 방향에 따라 섬의 개수가 3~8개로 변한다. 이런 까닭에 일출·일몰시 최고의 사진촬영 포인트로 손꼽힌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제주의 바다를 즐겨본다.


▲ 송악산 정상에서는 화산 분화구를 볼 수 있다.
형제섬을 지나면 송악산(104m)이 코앞이다. 특히 이 산은 수중화산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제주 안에서도 이색적인 장소로 손꼽혀 왔다.

제주 남쪽 바다 서쪽 끝에 자리한 작은 산의 시작은 연하고, 부드럽다. 송악산 주변으로 잘 조성된 해안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제주의 푸른 쪽빛 바다가 발아래다.

올레길 표시를 따라 좀 더 길을 나서보니 말들이 황금 들판 위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잠시 이국적 정취를 즐겨본다. 송악산의 비경은 일찍이 인기 드라마 올인·대장금 등을 통해 안방에 전해진 바 있다.
언덕을 올라 얼마 멀지 않은 송악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을 중심으로 서북쪽은 넓고 평평한 초원지대가 펼쳐지고 서너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다. 정상에는 둘레 500m, 깊이 80m 정도 되는 분화구가 있는데 그 속에는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 있다.

▲ 산방산에서 송악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바라본 형제섬
특히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조망은 자연스레 감탄사를 내뱉게 할 정도로 빼어나다. 앞으로는 마라도·가파도·형제섬이, 그 옆으로는 신비롭게 솟아 있는 산방산이, 멀리선 구름 모자를 눌러쓴 한라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평양을 건너온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힘든 여정을 쉬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송악산이 아름다움만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산 구석구석에는 1943~1945년 사이 일본군이 뚫어놓은 크고 작은 60여개 가량의 진지동굴이 남아 있다. 눈물로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깎아지는 해안절벽 아래엔 15개의 진지동굴이 흉측하게 남아 있다. 일본군은 여기에 어뢰정을 숨겨놓기 위해 제주사람들을 강제동원해 인공동굴을 만들었다.

▲ 송악산 정상 부근에서 일제 시절 사용되던 것으로 보이는 탄환을 발견했다.
당시 일본군은 7만명의 병사들이 제주도에서 결사 항쟁 한다는 ‘결 7호 작전’을 세우고 제주도를 요새화시키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죄 없고, 힘없는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또 송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방공호가 자리 잡고 있다. 송악산 뒤쪽으로는  알뜨르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다. 일본군은 1926년부터 1936년까지 제주도민을 동원해 20만평의 비행장을 만들었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는 규모를 80만평으로 키웠다. 당시 만들어 놓은 격납고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가미가제 조종사들의 훈련도 이곳에서 실시됐다고 한다. 특히 이 비행장 지하참호는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지하참호에 비해 1.5배나 크다는 주장도 있다.

파도가 하얀 포말을 만들며 일본군 진지가 있는 절벽에서 부서진다. 제주의 바다는 고요하고 아름답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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