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바다에서 일궈낸 억척같은 삶들”
“척박한 바다에서 일궈낸 억척같은 삶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3.04.04 16:26
  • 호수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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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인의 날을 빛낸 수산발전 유공자

은탑산업훈장 이승열 한국전복협회 회장
“양식어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연구”

한국전복협회 회장으로 우리나라의 전복종묘생산·전복양식 기술발전을 위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어촌지도자로서 어업인 소득증대 등 수산양식개발에 기여했다.

1951년 전남 완도군 완도읍 석장리에서 9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전남 완도에서 보내고 완도수산고등학교 어로학과를 졸업, 1975년에 전역 후 고향에 내려와 완도읍에서 거주하면서 미역가공 공장에서 근무하고,  해조류에 대한 공부를 나름대로 시작했다.

1998년경 전복해상가두리 양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05년경 많은 비용을 투자해 전복 육상종묘생산장을 시설하고 그에 맞춰 청산지역에 맞는 채묘시기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2013년 현재 청산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전복종묘는 전국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량품종이며 이는 안정적인 전복양식업을 가능케 하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같이 1982년 완도군 청산면으로 이주해 수산양식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지역에서 1982년 해조류(톳)양식, 2005년 전복 종묘생산 기술을 도입해 우리나라 전복양식의 원천적인 기술을 습득, 수많은 지역 어업인들에게 전수하고 우량종묘생산 보급 등으로 안정적인 전복양식 산업을 실현시켜 완도군을 한국 전복생산의 주 메카로 부각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전복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어촌지도자로서의 역할 수행

현직에서 은퇴할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촌현장에서 전복양식(해상 가두리) 500칸, 전복종묘배양장 1개소(6,611㎡)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부터 (사)한국전복산업연합회 완도군 지부장, 2012년부터는 (사)한국전복협회 회장직을 맡아 수행하면서 불철주야로 전복산업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타의 귀감이 되는 성실한 활동 등으로 지역사회 어업인들로부터 항상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어촌지도자로서의 역할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청년시절 수산양식(해조류, 전복) 분야에 꿈을 갖고 실패를 모르는 도전정신과 타고난 근면성실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한편으로 1992년 어업인후계자, 1996년 전업경영인으로 선정돼 수산업 전문분야에 전념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이는 젊은 어업인 후계인력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사례로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한다면 성공한다는 동기부여의 효과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업활동에 전념함과 동시에 수산피해예방 명예감시원의 활동을 하면서 자연재해로부터 어업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앞장서서 봉사하고 있다.

어촌계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해역별·품종별 어장정비·정리를 주도하여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증가시켜 해당업종 어업인들의 소득증대에도 크게 기여하는 등 어촌지역 발전을 위해 항상 노력했다.

 

철탑산업훈장 강애선 제주 서귀포수협 위미2리 어촌계장
어촌발전을 선도한 여성어업인

13세의 어린나이에 해녀 물질을 시작해 2008년 8월부터 현재까지 서귀포수협 위미2리 어촌계장으로 재직해 오면서 수산업발전과 어업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 왔다. 잠수어업인 소득증대와 마을어장 수산자원 회복을 통해 자율관리어업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등 어촌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현재까지 47여년 동안 바다 속에 생명을 담보삼아 해녀를 평생직업으로 생활해 오면서 해녀공동체 문화 등 어촌문화 전승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19세때 출가하여 아무것도 없는 가정형편의 어려움 속에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연로하신 시부모를 모시며 해녀물질로 모은 돈으로 야초지를 구입해 남편과 함께 감귤나무를 심어 지금은 3000여평의 과수원으로 일궈 냈다.

또한 슬하에 4명의 아들을 두어 이들 모두 대학에 진학시켜 학업을 뒷바라지 하는 등 자식농사에도 열과 성을 다하여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일꾼으로 키워낸 강인한 도전정신의 맥을 이어주고 있는 선도 여성 어업인이다.


■‘더불어 사는 어촌사회’  분위기 조성

2008년 8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 위미2리 어촌계장직을 수행해 오면서 잠수어업인들이 문전옥답을 가꾼다는 심정으로 매월 2회 이상 마을어장 청소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전복, 오분자기, 소라 등 패류자원 보호를 위해 해적생물 구제사업을 잠수조업시마다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마을어장의 주 소득원인 소라자원 증강을 위해 소라 포획 금지기간·금지체장을 엄격히 준수하고 매년 합리적인 어획량 관리를 통해 소라 총어획량제도(TAC)를 철저히 지켜 남획을 방지했다. 적극적인 수산종묘방류에 의한 자원조성으로 어촌계 소득증대에 기여해 어촌지역 활성화와 어업인 권익보호에도 적극 앞장서왔다.

위미2리 어촌계장직을 수행해 오면서 홀로 거주하고 있는 동료 해녀 뿐만 아니라 지역 소외계층을 찾아 다니며 봉사하는데 앞장서고 매년 어촌계 주관으로 개최하는 노인공경을 위한 마을 경로잔치와 효도관광을 실천해 왔다.

2005년 1월 어촌계원 전원(95명)을 자율관리어업공동체로 구성, 자율관리어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며 어업인 의식고취 함양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2008년 8월부터 어촌계장직을 수행하면서 마을어업 신어장관리 추진대책의 일환으로 물질조업 시 인명사고 예방을 위한 잠수 작업시간 줄이기, 마을어장 생산품종에 대한 통계관리, 갯녹음으로 사라져가는 어장 살리기를 위한 수산자원조성사업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수산자원회복의 노력을 통해 마을어업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 하는 등 어업인의 소득증대에 일익을 담당해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는 어촌지도자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마을어장 자원관리와 제주 수산업 경쟁력을 크게 높여 나가는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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