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0년을 투망하다 (22)]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그 뒷 이야기
[바다 50년을 투망하다 (22)]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그 뒷 이야기
  • 수협중앙회
  • 승인 2013.01.31 11:23
  • 호수 1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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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ㅣ 소설가

나에게는 오래 전부터 손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가 있었다.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명칭, 분포, 형태, 습성을 정리해놓은 박물지이다.

그 책을 자주 들여다 보았는데 보통사람들은 재미없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전(辭典)이 재미있을 리 없는 법 아닌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바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일 년에 최소한 두 번은 바다를 찾아간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바닷가 조금 걷다가 회 먹고 돌아오기 일쑤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별개이다.

나는 거문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육년 전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바다는 늘 나의 배경이고 대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어제 낚시를 다녀왔고 조만간 갯것도 나갈 생각이다.

소설도 대부분 바다와 거기에 입을 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을 써 왔다. 그러다보니 바다와 섬의 작가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내가 사는 거문도에 손님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들과 산책을 하다보면 이 꽃은 이름이 무엇인가, 저 나무는 어떤 종류인가 물어온다.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르거나 헷갈린다.

“아, 섬에 왔으니 바다 것을 좀 물어봐.”

“보여야 말이지. 다 물속에 있잖아.”

나는 이상하게도 식물이나 곤충, 새 이름은 쉽게 잊어버린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하지만 바다 것은 잘 기억했다. 아이 때부터 산이나 들보다는 바닷가에서 노는 것을 훨씬 좋아했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해녀였던 할머니를 자주 따라다녔던 것도, 옷짐을 지키며 몇 시간이고 혼자서 갯돌에 앉아있던 것도, 끝내 잠수하는 법을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 일간지에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연재를 시작한 게 이 년 전이었다. 나는 그 코너에서 거문도 바다 이야기와 200년 전 흑산도의 『자산어보』를 이어보고자 했다.

바다를 더 깊고 디테일하게 느끼는 법과 『자산어보』의 묘미와 의미를 확인시키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바다생물 관련 원고를 쓰려니 알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일곱 살 부터 시작했던 낚시와 20대의 선원 경험, 몇 권씩 가지고 있는 어류도감으로도 그랬다. 그때 발견한 것이 수협 기관지인 <우리바다>.

나는 잘 알고 있는 선배 (그의 부친이 수협조합원이셨다) 집에서 수십 권 되는 <우리바다> 과월호를 챙겨왔다.

그리고 물고기, 패류, 해초류, 바다동물류, 이렇게 자산어보처럼 분류를 했고 몇 년도 몇 월 호 몇 페이지에 그것과 관련된 것이 나오는가를 정리했다.

그 작업을 하다보면 손바닥이 딱딱해지곤 했다. 아마도 <우리바다>를 나보다 더 꼼꼼하게 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의 명정구 선생도 알게 되었다.

『자산어보』에 나오는 해양생물 중에 설명이 모호하여 끝내 알기 어려운 것은 명정구 선생께 질문을 하곤 했다.

30가지 해양생물을 다룬 연재를 끝내고 『인생이 허기질 때는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반향은 나쁘지 않았지만 더 좋았으면 했다. 독자가 이 책을 읽다가 오호, 바다를 좋아하는 내 친구에게 선물해 주면 좋아하겠군, 이러면서 또 한 권 사러가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들어본 그들의 반응은 책을 읽다가 못 참고 횟집으로 달려갔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내 덕분에 재미 본 동네 횟집 사장님들 여럿 계셨을 것이다.

원고를 쓰면서 가장 곤란했던 것은 사진이었다. 당장 연재를 하는 동안에도 사진을 한 장씩 올려야 했고 책으로 묶으려면 더 많은 사진이 필요했다.

문제는 매번 사진작가를 부를 수도 없거니와 해산물이 나의 일정에 맞춰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갈치를 찍기 위해 사진작가를 불렀지만 갈치가 잡히지 않으면 말짱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결국 카메라를 샀다. 돈도 제법 들었다. 원래 사진에 취미도, 실력도 없으니 좀 비싼 것이면 좋은 사진이 나오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을 들고 날마다 수협어판장과 어선, 갯바위를 돌아다녔다. 가장 난감한 것은 낚시갈 때였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갯바위 낚시 한번 가려면 여러 장비가 필요하다. 도시락까지 잔뜩 챙겨서 끄응 일어섰다가도 아차, 카메라, 하게 된다.

낚시에 무언가 물려 올라왔을 때도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수건으로 손 닦고 사진 찍어야 하니 말이다. 책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섬엘 찾아왔다. 그들은 바닷가를 걷고 책에 나왔던 것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낚아보고 먹어봤다.

넓고 깊은 바다의 기억을 그들은 그렇게 한 보따리씩 만들어가지고 되돌아갔다. 사람들은 바다를 막연히 생각한다. 관념적이다.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바다를 가까워지게 하는 것, 몇 가지를 전해줌으로써 훨씬 생생하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나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 일련의 작업은 나에게 저 깊고 푸른 바다를 알게 해준 사람들, 내 고향의 어부들과 해류와 물때와 물고기의 습성을 가르쳐준 선배들, 해녀였던 할머니, 바다의 정서와 언어를 가르쳐준 친지, 친구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같은 거였다.

사실 나는 그것 때문에 소설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이 책은 그들에게서 풍성하게 받은 것을 비로소 조금이라도 갚은 행위의 다름 아니다.

시간은 많이 갔지만 이곳 거문도 어부들은 오늘도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늙어버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잠수를 하는 해녀들도 푸른 물을 뚝뚝 흘리며 새로운 자산어보를 몸으로 쓰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나의 좋은 이웃들이다.


바다 50년을 투망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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