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0년을 투망하다⑤] 자원의 곳간, 혹은 머나먼 미지로의 길
[바다 50년을 투망하다⑤] 자원의 곳간, 혹은 머나먼 미지로의 길
  • 수협중앙회
  • 승인 2012.09.27 10:57
  • 호수 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신선 ㅣ시인

▲ 국화도

당진의 장고항은 서해의 작고 외진 포구였다. 이 포구의 선착장을 따라 가다 긴 방파제 둑에 올라서 보면 그 앞바다에 작은 섬 둘이 가로누워 있다.

누군가 소리쳐 부르면 이내 곧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그런 가까운 거리에 국화도는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 이 섬을 우연한 기회에 들렀다. 말이 우연이지 실은 이 섬에서 유학 온 한 학생의 소개를 받아 들르게 된 것이었다.

처음 장고항에서 여객선을 탔을 때 20여 분 남짓의 섬까지의 운항시간이 너무 짧고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모처럼 뱃머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바다란 역시 좋은 것이구나 싶을 때 배는 이미 섬 선착장에 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착장에서 마을을 통과해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섬 반대편 서쪽 해안에는 마치 안마당 같은, 활처럼 안쪽으로 휜 백사장이 바로 일행들 발밑에 펼쳐졌다. 나는 거기서 섬 주민들이 터앗처럼 일궈놓은 툭 터진 서해바다를 만났다.


장고항 앞바다에 웬 덩치 큰 어미개가
게슴츠레 눈 감고 누웠다
뒷다리 사이 하복부에는 불어터진 젖통을
치받으며 빠는 배냇눈 막 뜬 강아지 만한
잡목들 새새의 펜션 서너 동(棟)
때때로 어깨 죽지를 들썩이고.

방파제 돌아 나와 국화도는 그렇게
제 품안에 보듬었다
녹슨 철선으로 터앗 바다 몇 이랑씩 갈아엎어
우럭이나 꽃게새끼 키우는
1리, 2리 섬 동네들.

.............(중략)............

수수백년 쟁인 생계를 됫박질로 밑바닥까지
퍼내주는 바다는 평생 내 것이 없다.

- <국화도행>의 부분


장고항 배편으로 국화도를 몇 차례 드나든 뒤 나는 이 섬 얘기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인용한 시는 그 작품의 한 대목이다.

내가 서쪽 앞바다에 나가 돌아본 국화도는, 시의 내용 그대로, 그 웅크린 모습이 새끼들에게 젖을 물린 어미개와 흡사했다.

큰 섬 옆으로 삐끗 떨어진 작은 섬도 섬이려니와 잡목들 새새로 보이는 민박집들은 꼭 어미 품에 안긴 강아지들 꼴이 아닌가. 나는 국화도에 그런 어미개의 영상을 겹쳐놓고 시를 써 나갔다.

마치 자식처럼 사람들을 안고 기르는 국화도의 모습이란 어김없는 어미개의 형국을 닮았던 것이다. 그랬다. 서해바다는, 여느 섬도 그렇겠지만, 그렇게 국화도 섬사람들을 긴 세월 품어 키우고 있었다. 여기 이쯤서 나는 문득 어느 스님에게서 들은 얘기 한 토막을 떠올린다.

길고 오랜 세월을 외지로 떠돌던 아들이 돌아왔다. 그것도 세상 풍파에 깎일 대로 깎인 중년이나 되어서였다. 사연인즉, 고향집을 지키고 살던 늙은 아버지가 임종이 가깝단 연락을 받고서였다.

젊은 시절 가난이 싫어 궁벽한 어촌을 뛰쳐나간 아들은, 으레 가출한 청년이 그렇듯, 외지로 외지로 떠돌며 그동안 온갖 간난과 신산한 역경을 견뎌냈을 터이다. 그리곤 아비의 종신자식 노릇이나마 하기 위해 영락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옛집에 들이 닥친 것.

“그래 왔구나. 지난 일은 말 안 해도 내 다 안다. 됐다, 애비 말이나 들어라. 내가 네게 물려줄 재산이란 별 것이 없구나. 대신 평생 내가 일군 저 마을 앞 넓디넓은 난바다 하나를 물려주마. 돈으로 따지면 아마 수백만 냥짜리는 될 게다.”

늙은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겨운 듯 유언삼아 몇 마디 당부를 했다. 그리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누구보다 마르고 야윈 아버지의 국화도 손보다 모처럼 잡은 아들의 손이 더 거칠었다.

그렇게 수백만 냥짜리 넓은 바다를 뜻하지 않게 상속받게 된 아들은 머지않아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생전의 아버지가 했던 그대로 자식 역시 배를 탔고 누구보다 열심히 고기를 잡았다.

그렇게 터앗 일구듯 바다에서 새로 일구기 시작한 생계는 객지에서의 그동안 고생을 벌충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늘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아낌없이 자신을 퍼 준다. 말하자면 “수수백 년 쟁인 생계를 됫박질로 밑바닥까지 퍼내주는 / 바다는 평생 내 것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가진 자가 기근 심한 시절이면 어김없이 곳간 문을 열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독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양식을 퍼주었듯 말이다.

바다는 그래서 평생 내 것이 없다. 오로지 끊임없이 베풀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내어줄 뿐이다. 그런데 바다는 그런 거대한 모성과 자원의 곳간 노릇만 하는 게 아니다.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알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 위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 떠라 사랑하는 눈을 떠라........청년아

- 서정주(1915~2000)의 <바다>의 일부


과연 인간에게 젊음이란 무엇일까. 그 홍역처럼 열에 뜬 채 통과하는 우리네 삶의 한때란, 비유하자면, 쉴 새 없이 들끓고 설레며 뒤채는 저 바다와 같지 않던가.

위의 시 ‘바다’는 그런 젊음의 분방하고 다양한 속성들을 단적으로 우리에게 일러준다. 누구나 젊은 날에는 새롭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것 때문에 끝 모를 방황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비와 에미’로 흔히 상징되는 기성의 가치, 굳어진 기존의 고정관념들을 파괴하고 그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그렇게 ‘눈을 뜬 청년’들은 새로운 것, 미지의 세계를 지칠 줄 모르고 탐험한다. 그 탐험의 머나먼 길은 언제나 바다 위에 놓여있게 마련이었다.

이 세계의 도처로 뻗은 유사 이래 인간이 그어 놓은 무수한 항로들이 바로 그 탐험길이다. 일찍이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탈출하라, 너의 가정에서 너의 학교에서”라고 『지상의 양식』이란 책에 적은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구는 부모와 친척,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까지 가르친 바 있다. 이 역시 기존의 체계나 가치들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자기 정체성을 굳건히 확립하라는 소리였다.

아마 그런 다음 자리에 서정주 시인이 말하는 “알라스카로, 아라비아로, 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떠날 수 있는” 도처의 열린 세계를 만날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 우리 앞에 길은 항시 어디에로나 열려있고 어디에로나 갈 수 있다.

동서남북 어디로나 길이 열려 있는 공간-그것이야말로 바로 바다가 아닐 것인가. 시인 서정주는 이 같은 바다의 속성을 누구보다도 일찌감치 깨달은 셈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바다란 오늘날처럼 하늘길이 없던 고대로부터 낯선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통로였다. 그런가 하면 낯선 이국의 문물(文物)이 밀물인 듯 밀려들어 오는 관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지구촌의 다양한 문물과 숱한 사람들은 바다 길로 어김없이 들어오고 나간다. 이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퍼주는 모성과 곳간으로서의 바다와는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