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0년을 투망하다 ③] 바다의 문학, 문학의 바다
[바다 50년을 투망하다 ③] 바다의 문학, 문학의 바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2.09.06 11:11
  • 호수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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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 ㅣ 시인

▲ 고래문학제 '돌고래를 위한 시낭송의 밤'

수협중앙회는 수협 50년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엮은 본책 ‘바다를 일궈낸 희망, 수협 50년사’와 별책 ‘바다, 50년을 투망하다’를 출판했다.
본책에서 못다한 바다, 수산, 수협을 테마로 한 ‘바다 50년을 투망하다(The Heart of the Sea)’에 담겨있는 진솔한 얘깃거리를 하나 하나 풀어본다.


아름다운 책 『삼국유사』에서, 삼국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한 부분에서 ‘바다’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신화의 바다’다. 그 바다에서 나라의 근심을 다스리는 요술피리인 ‘만파식적’이 나오고,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이 나왔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바위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 바다가 있기에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해지는 빛나는 민족의 신화다.

한국문학도 바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근대문학의 효시로는 최남선의 신체시<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드는 일이 그렇다. 1908년 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린 이 시는 제대로 꼴을 갖춘 문학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문학이 바다에서 나온 ‘바다의 선물’인 것을 뜻한다.

원양으로 항해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바다는 바라보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움이 길을 만들듯’이 바다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근대부터 현대까지 많은 ‘바다문학’을 낳았다. 따라서 근대 이후 바다 문학의 대부분이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인 것이 증명한다.

소월은 <바다>라는 시에서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냐며 그리움의 바다를 노래했고, 영랑은 <바다로 가자>는 시에서 ‘발 아래 좍 깔린 산호라 진주요 / 우리 바다로 가자 큰 바다로 가자’며 동경의 바다를 노래했다. 위와 같은 정서는 60년 동안 한국문학 속의 바다문학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1969년 현역 어선선장이었던 천금성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영해발부근>이 당선되고, 1971년 상선의 항해사였던 김성식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청진항>이 당선되면서부터 바다문학의 시선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작중화자의 이동은 바다문학의 바다를 한반도 연안에서 원양, 대양으로 확대시켰다. 이른바 해양 문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까운 바다에서 먼 바다까지 바다문학의 살아 있는 무대가 되었다. 바다를 무대로 문학작품을 전문적으로 창작하는 사람들을 ‘해양문학가’라 부른다.

아직 우리 문학에서 해양문학은 낯선 장르지만 세계는 이미 해양문학의 시대를 열고 있다. 영국에서는 해양문학가의 수가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최고의 소설의 자리는 여전히 허먼 멜빌의 1851년에 창작한 『백경(白鯨)』이 차지하고 있다.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이후 100년이 지난 21세기에 들어서야 바다의 문학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지난 2000년 ‘해양 수도’를 자처하는 부산에서 (사)한국해양문학가협회가 발족된 일이 기폭제였기 때문이다.

전·현직 선장과 항해사, 선원 출신의 작가들이 등장하고, 바다를 문학의 무대로 삼는 작가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민들이 바다에서 얻은 건강한 수산물을 즐기고, 어촌에서 삶의 ‘어메니티’(amenity, 쾌적함)를 얻어 온 독자들에게 더 먼 바다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그건 용기와 도전을 가르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한 정서를 가진 독자들과 공감하기 위해 많은 문학인들이 바다에서 시와 에세이를 건지고 소설을 건져 출판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해양문학의 생산자인 해양작가와 소비자인 독자 시장을 확대하는데 있어, 바다의 문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한 ‘해양문학상’의 제정과 시상이 지금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부산시와 부산문인협회가 만든 ‘한국해양문학상’과 부산일보의 ‘부일해양문학상’, 여수시와 여수문인협회가 만든 ‘여수해양문학상’, 해양문화재단(2011년 재단법인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와 통합)의 ‘해양문학상’, 경상북도와 포스코가 제정한 ‘동해문학상’ 등이 그것이다. 적지 않은 상금을 걸고 바다의 문학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의 문학’을 ‘문학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양문학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정부의 열린 정책과 지속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작가들에게 바다를직접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많은 문학인들이 바다를 경험하고 그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만들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어느 바다, 어느 바닷가에도 없어 아쉽다.

좋은 바다를 가진 지방자치단체도 유명 관광지나 수산물 홍보에만 치중할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 문학의 바다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울산시 남구 장생포항 일대에서 열리는 ‘고래문학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의 포경 중단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장생포항에서 2008년부터 ‘고래문학제’를 개최해 문학이 죽은 장생포항을 살려내는 데 제 몫을 하고 있다.

떠난 고래를 울산 바다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고래문학제 기간 동안 장생포를 다녀간 문학인들이 장생포와 고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 고래는 한국 시인들에게 새로운 ‘키워드’가 되고 있을 정도며, 고래에 대한 시를 쓰지 않은 시인이 드물다.

이처럼 바다에서 만들어진 ‘바다의 문학’이 독자들에게는 ‘문학의 바다’를 선물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에게는 동·서·남해 외에 ‘영혼의 바다’를 가지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바다와 어촌과 어민이 함께 살아서 문학작품 속으로 투영되는 그 바다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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