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50년을 투망하다 ①] 항구의 이별에서 관광지의 낭만까지
[바다 50년을 투망하다 ①] 항구의 이별에서 관광지의 낭만까지
  • 수협중앙회
  • 승인 2012.08.23 11:35
  • 호수 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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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ㅣ 대중예술평론가

수협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1일 기념일을 맞아 미래 50년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등 새롭게 변모하는 수협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기념사업 중 발간사업의 일환으로 수협 50년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엮은 본책 ‘바다를 일궈낸 희망, 수협 50년사’와 별책 ‘바다, 50년을 투망하다’를 출판했다.

특히 본책에서 못다한 바다. 수산, 수협을 테마로 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발간한 ‘바다 50년을 투망하다(The Heart of the Sea)’는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바다와 수협, 수산, 수산인들의 생생한 현장속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기에 주목받고 있다.

이 책 속에 담겨있는 진솔한 얘깃거리를 하나 하나 풀어본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고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로 시작하는 1935년 <목포의 눈물>(이난영 노래)이 인기를 모은 이래, 한국 대중가요에서 바다는 늘 사랑받는 소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감각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노래에서 바다가 다루어진다는 현상 자체가 매우 새로운 현상이었다.

왜냐하면 수백 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반은 육지에서의 농사를 기반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수로를 가는 것도 주로 강을 통한 수로였으니, 바다는 어촌 사람들의 노래에서나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강제적 개항으로, ‘바다’를 통해 서양식 근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바다는 단순한 어업의 토대를 넘어서서, 문명화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희망적이고 광대한 세계의 의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대중가요에서, 목포, 인천, 부산, 흥남 등 온갖 항구를 다루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목포의 눈물> 같은 항구에서의 이별을 다룬 노래는, 당시에는 조선의 호남지방과 일본을 연결하는 화려한 신도시 목포에서의 다소 멋진 이별의 느낌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높다.

식민지시대 목포항 앞의 목포오거리는, 호남선의 마지막 철도와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으로, 일본식주택과 동양척식회사, 식산은행 등이 늘어서고 가로등 불빛이 찬란한 최신식 거리였다. 그랬기 때문에 백년설의 <대지의항구>에서와 같이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에게 해가 졌다고 쉬지 말고 ‘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라고 신나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도,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로 시작하는 박경원의 <이별의 인천항>이나 마도로스가 등장하는 노래가 간간이 유행하는 것으로 보아, 멋지고 화려한 항구, 특히 외항선이 드나드는 국제적 항구에 대한 동경은 어느 정도 지속된다.

1950년대까지는 여전히 우리나라 스스로의 산업으로 먹고 살수 없는 경제상황이었고, 대중들의 눈은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를 향한 동경을 바다를 통해 드러내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경제개발 계획 등의 본격적인 산업화의 시대로 들어선 이후의 바다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경제개발 붐으로 대중의 시선이 국내로 집중되기 시작하여 항구나 바다로 향하는 시선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선진국으로나가는 길이 바닷길이 아닌 하늘 길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로써 항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크게 떨어졌고, 1970년대 이후 항구에서의 이별을 노래하는 작품은 대개 ‘올드패션’의 트로트 곡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각각 히트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젊은이들이 바다에 대해 가지는 동경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바로 관광지로서의 바다이다. 즉 산업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은, 바다를 번화한 항구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백사장과 하얀 파도, 비치파라솔등과 관련해서 체험하게 된 것이다. 이들에게 바다는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윤형주 <라라라>),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바닷가에서 추억을 맺은 사람’(사월과오월 <바다의 여인>), ‘딩동댕 지난여름 바닷가서 만났던 여인’(송창식 <딩동댕 지난여름>) 등, 1970년대부터 쏟아진 바다에 대한 새로운 노래는 거의 대부분이 관광지로서의 바다이다.

이들은 여름 휴가지로 바닷가를 선택하고, 일상과 전혀 다른 공간에서 낯선사람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이즈음부터 ‘바캉스 베이비’란 말이 심심치 않게 신문에 오르내렸다.

이렇게 요란한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송창식 <고래사냥>),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하리라’(이정선 <나들이>),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중략) 술집에 까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최성원 <제주도의 푸른 밤>) 같은 노래 역시, 약간 색깔만 다를 뿐 결국 여가생활 속에서 만나는 바다를 노래한다.

도시의 번잡하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바다를 노래하는 것인데, 바다는 이렇게 일상을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도시와는 다른 호흡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시대부터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사색하고 바다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본격화되었다.

식민지시대에도 이런 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 이후부터는 훨씬 더 강화되었다. 김민기의 <친구>는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라고 노래하며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경계의 무의미함을 사색하고, 조동진의 <작은 배>에서는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없네’라고 노래하며 바다를 거칠고 험한 세상에 대한 상징으로 형상화한다.

1990년대의 패닉의 <달팽이>에서까지도, 좁은 자신의 방안에 웅크리고 있던 달팽이 같은 자신이 결국 넓은 바다로 향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바다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미부여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십 년간의 대중가요 속의 바다 형상화를 살펴보면 유독 아쉬운 점이 있다. 대중가요에서는, 활기찬 어업의 현장이나 왁자한 어시장의 모습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대중가요와 달리, 민요에서는 이런 어민들의 모습이자주 나타난다.

제주도 해녀의 민요 <이어도사나>도 ‘먹으나 굶으나 물질을 허영(하여) 한 푼 두 푼 모은 돈도 서방님 술값에 모자라 간다’라고 노래하며 물질하며 먹고사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았고, 황해도 어민들의 민요 <배치기>에서는 ‘연평 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고 다 잡아디려라(잡아들여라)’라며 출어를 나가는 신명나는 느낌을담았다.

그러나 대중가요에서는 이런 노래가 없다.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혹여 만들어졌다 할지라도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항구이든 관광지나 휴양지이든, 대중가요 속의 바다는 여전히 바라보는 자의 시선으로만 그려질뿐, 그곳에서 물에 몸을 적시고 비린내 묻혀가면서 사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타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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