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 (犧牲羊)
희생양 (犧牲羊)
  • 이명수
  • 승인 2011.04.28 11:47
  • 호수 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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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EU FTA(자유무역협정) 협정문 번역 오류에 이어 한·미, 한·싱가포르 FTA 협정문에도 번역오류가 잇따라 발견돼 대한민국 외교가 체면을 크게 구겼다.

국회에서는 협상 책임자에 대한 책임론까지 대두되면서 FTA 오류를 둘러싸고 막말 파문까지 일었다. ‘빨리빨리’의 속도가 낳은 결과로 풀이된다. 향후 FTA 협상이 걱정스럽다.

우리 FTA 협상은 ASEAN, 칠레, 싱가폴, EFTA, 인도와는 발효중에 있고 미국과 EU, 페루와는 타결된 상태다. 캐나다, 멕시코, 호주, 터키, 뉴질랜드, GCC, 콜롬비아와는 진행중이다.

가깝고도 먼 일본·중국과의 FTA는 협상 전 단계인 산관학 공동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위협적인 한·중 FTA협상은 공동연구 종료단계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의 FTA협상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사안이 다양해 많은 쟁점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섣불리 본 협상 단계에 돌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민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 일본 통상장관은 지난 24일 도쿄에서 제 8차 통상장관회의를 열어 3국 자유무역협정(FTA) 공동 연구를 내년 한·중·일 정상회담 이전까지 끝내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중국, 또 일본간 FTA 연구가 사실상 진전되지 않았음에도 이같은 결론부터 내려 당혹스럽다. ‘빨리빨리’가 우려된다. 졸속의 결과도 예단케 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내놓은 '세계 FTA 확산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 따르면 FTA을 통한 우리나라의 교역비중이 약 15%에 불과해 세계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세계무역 강국 가운데 꼴찌다. FTA의 실효성을 의심케하는 반증이다.  

수산보조금 협상도 발등의 불이다. 올들어 쟁점해소를 위한 논의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대 쟁점인 면세유 보조 존폐문제를 둘러싼 찬반 국가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자원보호라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아직까지 핵심쟁점에 대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FTA 및 수산보조금 협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당국은 어업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갈수록 협상 강도가 세져 이를 막는데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여기다가 대승적 차원이란 이유로 수산분야를 새 발의 피쯤 생각하는 국가적 정서에도 휘둘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 당국이 수립한 국내 대책도 속 시원한 구석이 없다. 농(農)자 뒤에 붙은 수(水)자 정도의 대안이 현실이다. 수산업과 어업인이 희생양(犧牲羊)인 셈이다.

수협과 어업인들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수산업의 산업적 가치와 다원적 기능을 알리면서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 당국의 실질적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소득보전 직불제 시행,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재원 확충, 영어자금 금리 인하조정, 면세유 보조 지속, 우리 수산물 우수성 전략 수립 등등 현장 어업인들이 갈망하는 대책이 부지기수다.

정부당국이 희생양을 삼지 않으려면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직접 살펴도 봐야 한다. 협상은 테이블에서 하지만 어업인들은 생존이고 현실이다.

면세유 보조가 폐지되면 어업인들은 끝장난다. 국민들에게 최고의 단백질을 공급할 수도 없게 된다. 우리 수산업과 어업인이 언제까지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양이 돼야 하나.

수협과 정치권이 FTA/DDA 체결에 따른 ‘어민보호 대책 토론회’를 오는 29일 국회에서 개최한다. 수산업과 어업인의 실상을 알리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장이다. 모쪼록 수산업과 어업인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는 실효적 대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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