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이 살아야 어촌·어민도 산다
갯벌이 살아야 어촌·어민도 산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1.03.17 10:41
  • 호수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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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용 수산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자연이 주는 산물을 대상으로 1차 생산을 이끌어 냈던 옛날에는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터라 사람의 노동력이 생산의 전부를 차지했다. 별다른 가공 기술도 없었으므로 먹는 것은 다 자연과 더불어 연계된 산물이었다. 농업이나 어업이나 다 마찬가지다. 농업은 씨 뿌리고 거둬들이는 철따라 집중된 노동력이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동계’의 형태로 마을공동체가 이루어졌다. 물론 생산 뿐 아니라 결혼·상례 등을 위해서도 생겼을 것이다.

생산수단이라고는 땅 밖에 없었던 시절. 내 몸은 성한데, 갈아먹을 땅이 없다면 남의 종살이나 다름없이 살아야 할 시절이었을 터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노동력을 내 것을 위해서만 온전히 바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촌은 농촌의 상황과는 또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 지선어장이다. 나의 것이 아니면서도 나의 생산의 장이 되는 곳, 그래서 내 생명줄이 되는 것이 지선어장이다. ‘어촌계’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면 무상으로 주어지는 ‘농토’와 같은 존재다. 생산수단이 주어지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곧 생명의 수단이었다. 마을 공동체에서 버림을 받아 추방을 당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큰 일이 아니었을까?

갯벌을 중심으로 하는 지선어장은 예부터 우리 어민에게는 생명줄이었다. 그런 만큼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규율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화가 되면서 공업용지를 위한 농토의 축소, 농업용지 확보를 위한 갯벌의 매립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많은 갯벌이 사라졌다.

1987년 우리나라의 갯벌 면적은 3,203.5㎢였으나 2008년에는 2,488.4㎢로 감소(△22.3%)했다. 그 속에서 보상이네, 이주네 하면서 어촌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래도 어촌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굳건히 이어져 가고 있다. 그들의 변함없는 소중한 재산이자 생명인 갯벌이라는 어장에 있기 때문이다.

갯벌. 이것은 우리 어업인의 또 다른 생명인 지선어장을 도시민과 연결해 주는 통로다. 갯벌은 홀로 생산의 현장만 된 곳이 아니다. 갯벌 곳곳마다 그 속에서 살아온 어민들의 애환과 문화, 감정이 담겨 있다. 전국 연안가 어디라도 그 나름의 애환이 살아있다. 메마르기 쉬운 도시민의 마을을 열어주고 연결해 주는 것도 갯벌이다. 참으로 고마운 곳이다.

요즘 산업화가 유행이다. 실업이 많다보니 해결책으로 산업화가 나왔다. 그러나 그 산업화가 걸맞지 않은 어업도 적용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어업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다. 자본만 투입하여 공정라인을 늘린다고 생산이 늘어나는 체계가 아니다. 갯벌이 지속가능한 생산의 장으로 남아 있도록 보전해야 하는 것도 이 시대 우리들의 의무다.

무엇보다도 어촌에는 사람이 있다. 부족하지만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부모 형제가 그들이다. 산업화는 그들을 몰아낸다. 1인의 사장을 위해 모두가 노동자로 되는 것. 그게 산업화 아닌가. 재래시장이 모두 없어지고, 거대 마트의 주인을 위해 모두 판매원이 되도록 하는 게 산업화다. 그러나 평생 무릎 닳아가며, 뙤약볕에 피부 갈라진 우리 부모형제를 누가 써 주겠는가. 산업화가 어민과는 거리가 먼 딴 나라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민과 어촌과 함께 가는 산업화여야 한다. 사람이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정책이 있고, 정책의 중심에는 어민이 있다. 어민을 중심에 둔 정책만이 어민이 살고, 어촌도 살고, 어업도 산다. 갯벌과 어촌에서 발생하는 다원적 기능도 살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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