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바닷길을 이은 하얀 배의 기적 ‘수협 공제병원선’
생명의 바닷길을 이은 하얀 배의 기적 ‘수협 공제병원선’
  • 배석환
  • 승인 2022.07.06 19:59
  • 호수 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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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양호를 시작으로 3척의 공제병원선 운영…의료사각지대 해소
1975년 9월 23일 새어민호 첫 출항
1975년 9월 23일 새어민호 첫 출항
1977년 새수협호 첫 출항
1977년 새수협호 첫 출항
수협 공제병원선 공제 환원사업 일환 무의 낙도어민 의료지원을 위해 추진
수협 공제병원선 공제 환원사업 일환 무의 낙도어민 의료지원을 위해 추진
6년 동안 360여 개 도서 무의 낙도어민 67만 4568명 진료
6년 동안 360여 개 도서 무의 낙도어민 67만 4568명 진료
1980년부터 정부 무의촌 일소정책과 각 시도 병원선 운영으로 공제병원선 효과 감소
1980년부터 정부 무의촌 일소정책과 각 시도 병원선 운영으로 공제병원선 효과 감소

1970년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던 도시와는 달리 우리 어촌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현실이었지만 그 중 가장 부족한 것이 의료시설이었다. 특히 도서벽지에 살고 있던 어업인들의 경우 그 상황이 심각해서 간단한 수술만 받아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한 의료시설이 있는 곳의 어업인들조차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당시 어촌이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1974년 당시 내무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900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으며 그 중 705개의 유인도에 19만 가구 11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유인도에 존재하는 의료시설은 병원이 40개소 한의원이 55개소, 조산원이 11명, 약방이 335개소가 전부로 110만 명의 섬 주민들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 큰 문제는 유인도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51개 군·면에 시설이 몰려있었다. 따라서 654개의 낙도에는 의료시설이 전무했다. 설상가상으로 가까운 면 소재지 섬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선으로 2~3시간을 가야 하는 것은 물론 기상이 안좋으면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수협중앙회는 이러한 어촌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공제병원선 운영을 계획하게 됐다. 이를 위해 국립수산진흥원(現 국립수산과학원)으로부터 척양호(68톤)를 무상으로 대여받아 개조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척양호의 개조가 완료된 후 내·외과의사, 치과의사가 각 1명, 간호원 2명과 수협중앙회 사무장을 탑승인원으로 구성하고 654개의 유인도에 거주하는 27만 명 어업인들을 진료하기 위해 1974년 7월 27일 인천수산물공판장 부두에서 출항식을 갖고 닻을 올렸다. 
출항 첫 해 83개 도서, 2만 2617명을 진료하며 우리 어업인들의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전국에 ‘하얀 배의 기적’을 알리기 시작했다. 각 도서지역을 돌며 어업인들을 치료하는 동안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섬 주민들의 병이 심각했고 한 척의 병원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병원선을 추가로 운영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에 따라 1975년 공제 환원 사업비 4787만 원을 투자해 129톤급 새어민호를 건조해 척양호와 함께 다치고 아픈 우리 어업인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두 척의 공제병원선은 1975년 221개 도서 5만 8715명의 어업인들을 진료했다.
1977년 새수협호(130톤 급)가 건조되면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 불릴만큼 최신 의료시설을 갖추게 됐다. 3척의 공제병원선이 우리나라 삼면의 바다를 누비며 진료한 어업인은 10만 7495명으로 도서지역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수협중앙회의 노력은 지방자체단체에 큰 자극이 됐고 1980년 정부의 무의촌 일소정책이 강화되자 각 시도에서 직접 병원선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에 수협의 공제병원선은 자신의 책무를 다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후 공제병원선을 운영하던 자금 중 일부를 공제장학금사업으로 전환했으며 병원선의 경우 서해5도에 배치돼 공동운반선이라는 이름으로 어업인들을 위한 운항을 멈추지 않았다.

진정택 척양호 사무장
진정택 척양호 사무장

진정택 척양호 사무장
“기약 없는 재진료 언제나 미안해”
가는 곳마다 열렬한 환호를 받았어요. 배가 도착하면 마을주민들이 모두 나와 박수를 쳐주거나 밴드부를 불러 공연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기쁨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공제병원선의 활약상은 금방 다른 섬들에 퍼졌어요. 저마다 배를 타고 배가 병원선이 도착하는 섬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당시 어업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분야는 치과였어요. 대부분의 섬 주민들은 만성 치주염을 앓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가 이를 뽑아야 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가는 주민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함이 남았어요. 우리가 열심히 치료하고 있지만 언제 또 들를지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전문의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주민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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