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수협을 위해 도전하며 뜨거운 열정 가지세요”
“100년 수협을 위해 도전하며 뜨거운 열정 가지세요”
  • 김병곤
  • 승인 2022.03.31 20:00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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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37년 인생의 궤 함께… 조용식 원로 선배

“우리 수협은 제가 입사할 창립 당시와 비교해서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수협중앙회가 100년 수협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항상 뜨거운 열정으로 미래의 목표를 향해 도전하길 바랍니다”

조용식 선배는 창립 멤버로 수협중앙회와 인생의 궤를 함께했다. 조 선배는 정확하게 1961년 10월 대한수산중앙회로 입사했다. 이후 수협법 제정 공포에 따라 1962년 4월 1일 수협중앙회가 대한수산중앙회를 인수함에 따라 수협중앙회 창립멤버가 된 것이다. 

수협중앙회 창립이전 우리 수산업은 큰 격랑기를 맞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존립해온 수산단체들은 해방이후 어업조합, 수산조합, 어업조합연합회와 대한수산중앙회로 나뉘어 있어 혼돈속에 진통이 계속됐다. 6.25 전쟁이후에도 조합들은 난립했고 정부의 ‘수산단체 정비폐합 요강에 따라 대한수산중앙회가 수산단체의 중앙기구로 활약하게 됐다. 이후 수협법 제정이 이루어진 듯했으나 5.16혁명으로 법안이 연기됐으나 1962년 1월20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률을 공포하면서 수협이 발족했다. 

“총무과로 입사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브리핑 보조원으로 참여하면서 긴장속에서 업무보고를 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는 조 선배는 “당시는 근무환경도 좋지 않았고 직원 숫자도 적어 밤을  세워 일했던 것이 다반사였지만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 시절을 반추했다.

조 선배는 명동 청사에서 광화문, 경운동 수운회관, 현재의 잠실시대까지 수협중앙회의 부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1961년 입사해 지난 1998년 퇴사해 37년을 수협에서 보냈다. 여의도, 청담동, 언주로 지점장을 역임했고 신탁증권부장, 상호금융 부장을 거쳤다. 

조 선배는 이어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뜻과 힘을 한데 모아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경제조직이다”며 “그래서 협동조합은 자발적이고 운영이 민주적이며 사업 활동이 자조적이고 경영이 자율적이며 존립이 조합원에게 봉사하는 데 있다”며 협동조합 이론을 뚜렷이 기억했다.

“사실 수협의 설립은 우리 어업인들에게 희망을 싹틔워 주고 수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주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그는 “가난한 어업인들의 지원을 위해 자체자금 조성운동을 추진했던 것이 기억이 생생하다”고 밝혔다. 

조 선배는 “무엇 보다도 수협이 자율성을 갖춰진 것은 지난 1990년에 실시한 조합장과 중앙회장 직선제였다”며 “직선제는 기존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민주적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춘근 초대 중앙회장부터 18대 박종식 회장 체제의 수협을 경험한 수협의 산증인이다. 

“수협 창립 맴버 일원으로서 60주년을 맞이한 수협중앙회를 보고 있으니 무척 자랑스럽다”는 그는 수협이 100년을 넘어 세계 최고의 협동조합으로 인정 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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