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인 외면한 군급식 체계 개편 유감
어업인 외면한 군급식 체계 개편 유감
  • 김병곤
  • 승인 2022.01.05 20:13
  • 호수 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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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의무, 어업인 입장 고려않고 기업중심 시장조성 ‘우려’

◆ 군 급식 조달은 어업인 보호 목적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3조 제1항에 농·어업의 보호와 육성을 국가적 의무로 천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 산업기반이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농업과 어업 등 1차산업을 기반으로 고도성장의 기틀을 닦았다. 한때 수산물은 우리나라 수출 주도 품목으로 외화 획득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1차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위상이나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며 종사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어촌은 가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국가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로 했고 그러한 맥락에서 정부의 정책도 뒷받침해 왔다. 

그나마 1962년에 수산업협동조합이 발족된 것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정부의 어업 육성은 군납을 통한 안정적인 판로 확보로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1970년부터 국방부와 농·수협이 맺은 ‘군 급식품목 계획생산 및 조달에 관한 협정’에 따라 군에서 소요되는 수산물 급식품목은 수협을 통한 계획생산과 납품이 이뤄지게 됐다. 

어업인이 채취·양식한 수산물을 어업인을 대변하는 단체인 수협이 수매와 계획적인 생산으로 군에 공급하게 된 것이다. 이는 농업과 함께 1차산업인 어업을 국가가 보호·육성하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어업인의 소득을 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협정 제1조는 ‘군 급식운영에 필요한 농·수·축산물을 농업협동조합 및 수산업협동조합을 통해 계획생산, 계통출하, 공판장을 통한 구매납품으로 조달함으로써 군 급식의 안전·안정성 확보와 장병 급식 질 향상과  대한민국 농·어업인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 이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같은 군급식 조달 방식은 산업화를 뒷받침했으면서도 그로 인한 환경파괴와 어장상실 등의 피해를 입어온 어업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조치이기도 하다.

◆ 결국 어업인 피해로 귀결

더욱이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한 시장개방은 농어촌 사회의 몰락을 가속화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3차 산업혁명에 이어 4차, 5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그 관심과 지원은 대기업 등에 집중돼 1차산업인 농·어업은 도외시 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최근에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방류 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수산물에 대한 소비감소로 이어져 결국 어업인의 피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적 차원에서 어업인을 보호하고 수산업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점이다. 하지만 군 급식 체계를 통째로 바꾸려는 최근 정부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방부는 기존 군 급식 조달체계를 2025년에는 완전경쟁 조달체계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농·어업인을 대변하는 농·수협은 참여 기회가 없어져 결국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형 유통업체와 중간상인만 이익을 취하고 농·어업인은 소득증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헌법과 협정에 따라 농·어업을 보호하고 육성코자 하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국방부가 기존 협정상의 계획생산 체계를 부정하고 경쟁조달 방식을 취하겠다는 것은 농·어업인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결국 대기업 중심의 군 급식 시장 조성을 방치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망각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군 급식체계는 중앙조달과 부대조달로 나뉜다. 중앙조달 품목은 주로 가공품 등이 여기에 해당해 일반적으로 젊은 장병들의 선호도가 높은 편인 반면에 부대조달 품목은 영양상 균형을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농·수산물 등이 해당한다. 중앙조달 품목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그 원재료가 수입산인 경우가 많다.

◆ 국민 건강 지키는 것은 국가 의무

그러나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부터는 중앙조달과 부대조달 간의 경계가 없어져 장병들의 선호도가 높은 가공품 위주의 식단으로 편성될 우려가 크다. 이는 영양학적으로 볼 때에도 국방의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국가의 예산(세금)으로 군 장병들의 급식에 수입산의 소비를 늘리고 대기업의 매출을 늘려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실례로 2021년 8월 육군 모 보병사단에서 수산물 식재료를 조달하기 위한 경쟁입찰을 실시했는데 낙찰된 유통 전문업체가 납품하게 될 식재료의 국내산 비중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 급식에서 수입산 식재료가 장병들의 식탁을 잠식하게 된 것이다. 경쟁조달을 통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체가 낙찰되면 저질·수입산 식재료 사용은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는 군 장병들의 건강에 대한 위협은 물론 어업인과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국가 예산이 이렇듯 쓰인다면 그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마땅히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국방부 군 급식 개편안은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여론을 의식한 섣부른 결정은 반드시 과오를 낳는다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하다. 올해는 새정부가 탄생한다. 이렇게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문제들을 잘 점검해 주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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