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9.04.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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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숙 | 서울시 송파구

손님이 뜨거운 커피를 엎질렀다. 내가 커피를 탁자에 가져다주고 막 돌아선 참이었다. “어이쿠”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커피가 쏟아져 탁자는 물론 바닥에 흥건했다. 그리고 손님의 베이지색 바지에 커피물이 들어 있었다. 손님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했다. 호주머니에서 안경 닦는 천을 꺼내 식탁을 훔쳤다.

나는 재빨리 마대와 행주를 가져다 식탁과 바닥을 치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손님이 뜨거운 커피에 데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손님은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동행이던 학생도 당황한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손님들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탁자와 바닥을 닦았다. 그러는 동안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이 있나 싶어서였다.
 
커피를 엎지른 분은 목사님이었다. 그리고 함께 온 동행은 고등학생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목사님과 학생은 성경공부를 위해 만나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커피를, 학생은 핫초코를 시켜놓고 그들은 한 시간 동안 대화에 열중했다.
 
목사님을 알게 된 건 육년 전이다. 처음에 그를 봤을 때는 전도사님이었다. 그는 가게에 케이크를 사러 오곤 했는데 하도 인상이 좋아서 내가 말을 붙이게 되었다. 그때 전도사라는 걸 알았다. 그 후 그는 개척교회 목사님이 되었고 몇 년간 가게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학생과 함께 다시 가게를 찾은 건 몇 달 전이었다.

목사님은 웃음을 얼굴에 달고 다녔다. 눈이 묻혀버릴 만큼 환한 웃음은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했다. 내가 말을 붙인 것도 그 웃음 때문이었다.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약간은 특별한 손님들을 접하게 되는데 목사님도 그중 한 분이었다.
 
목사님의 겉모습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개척교회라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는 항상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목사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였다. 커피를 엎지른 날도 목사님의 건강한 웃음에 그만 나도 모르게 “목사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는 내게 건강하시라고 그래야 오래 뵐 수 있다며 덕담을 건넸다.
 
나는 커피를 다시 뽑아 그에게 가져다 줬고 그는 커피 값을 내려했다. 그때 점주가 끼어들었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드시라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의 실랑이가 오갔다. 하지만 보기 좋은 실랑이였다. 배려와 이해가 깔린 마음은 곤란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힘이 있었다.
 
목사님과 학생은 여느 때처럼 열띤 대화를 했고, 목사님은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커피가 얼마나 맛있을까마는 그는 항상 커피가 맛있다고 했다. 그들이 나가는 걸 보던 점주가 말했다. “목사님, 다리 괜찮을까요? 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밖에는 미세먼지가 많아 탁한 날, 가게 안에 있던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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