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부와 어부사이
[기고] 어부와 어부사이
  • 수협중앙회
  • 승인 2010.09.08 21:25
  • 호수 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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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정정길

여명이다. 찰나의 어둠이 막 걷히고 있다. 등대는 잠을 청하겠다고 하품을 한다. 잠시 지나자 붉은 빛이 물결쳐 오며 아름답게 반사한다. 먼 파도가 일엽편주를 밀고 들어온다. 통! 통! 통! 정박 시킨다.

달려가 본다. 단 두 분이다. 할아버지 선장에, 할머니 선원이다. 수건을 동여 맸다. 새벽바람이라 약간 차다. 그물을 사리기 시작한다. 능수능란하다. 생선이 듬성듬성 걸려있다. 침묵 속에 손놀림이 빠르다. 약간의 파도가 뱃전을 흔들 뿐이다.

‘많이 잡았습니까.’ 나그네가 묻는다. ‘아니요. 별로요.’ 할머니 대답이다. 목에는 손 전화가 대롱대롱 거린다. 연신 들여다본다. 아마 생선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연락을 줄 모양인가보다. 아침 햇살이 여유롭다.
바람 한 점이 소매를 당긴다. 작업하는 손놀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난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 했다. 처음에는 소년이 같이 배를 탔다. 그런데 낚시가 별로이자 소년의 아버지는 다른 배를 타게 했다. 그 소년과의 대화다.

-소년 : 이젠 할아버지와 같이 갈 수 있어요. 우리도 돈을 좀 벌었어요.
-할아버지 : 아냐. 넌 재수 있는 배를 탔는데 . 거기 그냥 있어.
-소년 :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87일을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우리는 석 주일 동안 날마다 큰 놈을 잡은 걸 기억 하세요?
-할아버지 : 기억하지. 네가 의심을 해서 내 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 고 있어.
-아버지가 나오라고 해서 그랬죠. 난 아이니까 아버지 말을 들어야 해요.
-할아버지 : 알아. 으레 그런 거지.
-소년 : 아버진 신념이 없어요.
-할아버지 : 그래. 그래도 우리는 있지. 안 그래?
-소년 : 그럼요. 테라스에서 맥주 한 잔 사드릴 데니 드시고 나서 어구를 나르죠?
-할아버지 : 좋은 생각일세. 어부와 어부사이니까.(을유문고 54. 에서)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는 어떤 사이라고 할까. 어부와 어부사이, 아니면 부부와 부부사이, 아니면 연인사이. 엄격히 말해서 승선을 하고 있을 때는 공적인 관계가 되고 하선을 하면 사적인 관계가 된다. 공사의 구별이 엄연하다. 그런데 그 간극은 얼마 될까. 인간들은 이를 혼돈하고 있다.

노인이 말하는 어부와 어부사이. 듣기에 참으로 정다운 말이다. 아주 해맑은 뜻이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작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협동이다. 한 순간이라도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방심은 금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부부의 작업이 몹시도 정겹게 느껴진다.

-할머니 : 오늘 애들이 오는데 이래 가지고 되겠나.
-할아버지 : 난들 별수 있나. 하늘이 하는 노릇을. 그래도 한 평생 이렇게 잘 안 살았나. 빨리 서둘러라. 늦것다.
-할머니 : 죽을 고비는 안 넘겼나. 야들이 와 전화는 안 주노.

할머니가 전화를 자주 들여다보는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노부부의 어부와 어부 사이를 가늠해 본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삶. 인간의 마음보다도 더 심한 변화. 이것이 바다다. 이러한 삶의 밑바닥에는 어부와 어부 사이에 아주 깊은 신뢰가 없다면 그 큰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없다.

노인과 바다. 할아버지 선장과 할머니 선원. 이젠 손을 놓아야 하는 그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로 나간다. 우리 모두 어부와 어부 사이가 되어서 물길을 따라 간다면 넉넉한 바다가 되리라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할아버지 선장과 할머니 선원은 연인이자, 부부로서 오늘도 노구를 이끌고 그물을 던지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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