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란 혀끝으로 느끼는 우리 땅의 숨결이다
맛이란 혀끝으로 느끼는 우리 땅의 숨결이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8.07.05 10:49
  • 호수 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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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재료와 조리법을 불문하고 가리는 음식이 없다. 그런 이유로 먹부림을 부려야 하는 자리에 곧잘 초대되곤 한다. 그런 자리에서 이어지는 나에 대한 소개는 ‘안 먹는 건 있어도 못 먹는 건 없는 사람’이다. 이 말은 사실이지만 내가 처음부터 무엇이든 다 잘 먹는 이는 아니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밤바다를 자랑하는 여수에서 태어났다. 이후 마산을 거쳐 전라북도 익산(과거 이리)에서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당시 익산에서 우리 가족들이 자주  찾던 외식 장소는 횟집이었다. 하지만 난 가족 중 유일하게 회를 먹지 못했다. 그 물컹한 식감과 비릿한 냄새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횟집에 들어서는 날이면 횟집 사장님은 말없이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고 얼마 뒤 해산물이 가득 차려진 상 위엔 새까만 짜장면과 샛노란 단무지가 올려졌다.

내가 맛에 대해 특히 바다에서 난 제철 음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밥벌이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나는 2000년 여름 여행 잡지사에 입사해 세계 곳곳,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참 많이 돌아 다녔다. 그러면서 이 땅이 지닌 다양한 맛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던 비린 음식의 트라우마 또한 극복하기 시작했다.

‘음식의 트라우라’라 하니 뭔가 거창한 듯 하지만 사실 단 한 번의 강렬한 경험이 만들어낸 깊고 짙은 기억이다. 회식자리에서 선배의 반강요로 처음 맛본 과메기는 내 인생 최고의 물컹한 비릿함을 선물했다. 그렇게 과메기를 외면한지 몇 년 후 포항 구룡포로 출장을 가게 됐다.

마지막 촬영지는 과메기가 익어가는 덕장이었다. 덕장 안으로 들어서니 아주머니 몇 분이 분주하게 과메기 껍질을 정성스레 벗기고 계셨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갑작스레 과메기 한쪽을 쭉 찢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치아에 박히는 꾸덕꾸덕한 과메기의 속살이 참으로 쫄깃하고 고소했다. 과메기의 참맛이었다. 내가 왜 이 맛을 모르고 살았던가. 그 겨울 과메기는 나의 술도둑이었다.

현지에서 맛보는 제철 수산물의 맛에 눈을 뜨면서 계절마다 나의 뇌와 혀, 두 다리는 분주해졌다. 누군가 부러 시킨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할 의무도 없지만 이상한 사명감에 시달리며 여장을 꾸린다. 이 계절, 딱 이 시기에 놓치고 싶지 않은 수산물의 맛 때문이다.

“벚꽃이 피었네, 벚굴 맛이 들었겠군. 주꾸미도 알이 통통하게 올랐을 텐데… 어느새 여름이네 고흥 가서 갯장어 데침회 한번 먹어야겠군, 민어에도 기름이 돌 텐데… 가을이 왔으니 가을 낙지 한번 잘근잘근 씹어야 하는데… 겨울이 왔으니 동해로 못난이 삼형제(곰치, 도치, 장치)를 만나러 떠나야겠군…”

유통망이 좋아진 탓에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는 쉽게 제철 수산물을 맛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나는 많은 사람들이 현지로 가서 제철 음식을 맛보길 권하고 싶다. 자연이 선사하고 그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이 공을 들여 완성한 현지의 맛은, 딱 그 공간, 그 공기 속, 그 손길로 만들어 졌을 때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다. 포구의 바람을 피부로 맞고 뱃사람들의 노동을 눈으로 본 후 푸근한 포구의 인심이 더해진 제철 음식을 마주하면 그 음식은 맛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이 되고 아름다움 맛의 기억이 된다. 맛이란 혀끝으로 느끼는 우리 땅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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