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놀러가다 부안군‘마실길’
바다에 놀러가다 부안군‘마실길’
  • 배석환
  • 승인 2017.08.31 14:44
  • 호수 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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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강

가을이 손에 잡힐 듯 하늘이 청명하다. 바람은 습기가 사라지고 담백해졌다. 푸른 들판위에 무심히 피어난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버스창 너머로 보이는 변산반도의 풍경은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마실가기 딱 좋은 날이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라면 다소 생소한 지역명이다. 하지만 ‘채석강’이라는 명칭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제주도를 제외 한다면 바다와 맞닿은 바위절벽의 위용이 가히 우리나라 최고라 불린다. 그래서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어디 이뿐이랴 채석강에 뒤지지 않는 ‘적벽강’이 바로 이어져 있으니 그 풍경을 한번도 안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다.

▲ 닭이봉정상에본 풍경
특히, 바닷물이 물러나기 시작하고 갯벌과 모래사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직접 두 발로 걸으며, 때론 두 손으로 만지면서 자연이 만들어낸 조각품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 트레킹 코스를 ‘마실길’이라 부른다. 마실이란 용어는 마을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여러 지역 방언에서 ‘마실가다’는 마을에 놀러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실길은 총 8가지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채석강과 적벽강이 포함된 코스는 3코스로 ‘적벽강 노을길’로 불린다. 총 길이는 9km로 2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비교적 쉬운 길이다. 보통 격포항에서 출발한다. 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고, 해안을 따라 형성된 마을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다 내음이 반가움의 인사를 건넨다. 꽃게를 실어 나르는 어선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격포항. 부안군에서 가장 큰 항구답게 시끌벅적하다. 아직 때가 이르지만 전어가 한 가득 잡힌 그물도 눈에 들어온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항구에 꽉 들어차 있다. 수산시장에는 수산물을 흥정하는 소리로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한 낮인데도 자리를 잡고 회 한점에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는 여행객들이 부지기수다. 

▲ 마실길
▲ 수성당



격포항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채석강이 보인다. 억겁의 시간동안 층층이 쌓여진 화강암과 편마암 지층이 마치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길을 따라 보는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그 웅장함이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새삼 각인시켜 준다. 다만, 중국의 채석강과 모습이 흡사해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지니 어딘지 모르게 아쉬울 따름이다. 

채석강을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두어 시간이면 다시 물이 차기 시작한다.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미끄러운 바윗길과는 정 반대인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격포해수욕장이다. 여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는 피서객들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바다에 몸을 맡긴다.

▲ 후박나무군락지
▲ 격포항

어느새 물이 들어차 바닷길이 사라졌다.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걷는다. 30여분 정도 흘렀을까. 후박나무군락지를 지나니 어디선가 날선 소리가 들려온다. 꽹과리 소리 같기도 한데 기분이 묘하게 다르다. 그 소리를 쫓아 걸으니 작은 사당 같은 건물이 나온다. ‘수성당’이다. 풍어제를 지내는 곳이다. 발길을 이끌었던 소리는 광징 소리였다.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악기로 징과 같이 생겼다.

광징 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 하지만 발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검붉은 빛을 발하는 적벽강이 펼쳐져 있다. 채석강이 남성적인 매력이 있다면, 적벽강은 여성의 미를 뽐낸다. 빛을 반사하는 절벽의 색이 어딘지 모르게 신비롭다. 전망대에 올라 푸른 바다와 함께 조망하니 색상의 차이가 더욱 또렷해진다.

3코스 마실길의 종점인 하섬전망대에 이르니 노을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처음 출발지인 격포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채석강을 품고 있는 닭이봉 정상에서 보는 일몰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구름이 드리워지긴 했지만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빛깔이 너무도 강렬해 잊혀지지 않는다. 마실 한 번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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