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浮沈)의 역사 딛고 ‘새로운 협동문화의 장’ 연다
부침(浮沈)의 역사 딛고 ‘새로운 협동문화의 장’ 연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0.03.03 17:36
  • 호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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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1일 출범 중년의 성숙미 완성
자기개혁, 투명경영으로 끊임없는 변화 추구
질적, 양적 성장 어업인 대표 단체 위상 강화
21세기 신해양시대 수산업과 경제발전 기여

수협의 어제와 오늘
수협은 어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과 수산업 생산력 증진 및 어가소득 증대를 도모함으로써 민주적 협동조직을 통한 복지 어촌건설의 임무를 띠고 탄생했다.

수협이 어업인의 종합협동조직체로 발족한 지 올해로 창립 47주년을 맞았다. 1962년 1월 20일 법률 제1013호로 수산업협동조합법이 제정, 공포되고 같은해 3월에 수협법 시행령이 공포됨에 따라 구 수산단체의 해산과 더불어 그해 4월 1일 역사적인 수산업협동조합의 출범을 보게 됐다.

수협은 21세기에는 유수의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 수산업 경쟁력 향상과 활기찬 복지어촌 건설을 위해 노력해왔다.

2001년 한때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2007년 1131억원에 달하는 흑자를 기록하는 등 끊임없는 노력으로 어업인의 진정한 대표단체이자 생산성 있는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0년대 개발기
발족 당시의 수협조직은 88개의 지구별 조합, 12개 업종별조합, 2개 제조업조합 등 모두 102개의 회원조합과 중앙회로 구성됐다.

그 당시 어촌에 산재해 있던 각종 계조직을 수협의 계통조직으로 흡수해 어촌계를 조직했고 이 어촌계를 수협운동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초창기의 수협사업은 위판장의 설치, 각종 수산자금의 취급, 유류직배사업의 개시 등 사업기반의 확립과정을 거쳐 1967년부터 각종 수산개발사업의 적극적인 추진과 원활한 사업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70년대 성장기
수협은 어촌 새마을운동을 통한 어촌소득증대와 어촌환경 개선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기초조직인 어촌계의 육성발전과 함께 수협운동의 성숙기를 맞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73년과 79년 두차례 석유파동을 겪자 수협은 운영목표를 수산업 발전에서 어업경영안정을 위한 활동으로 전환시켰다.

영어자금과 각종 어업생산자재의 원활한 공급과 생산어업인의 어가안정 및 소득증대를 위한 수산물가격 지지사업, 무역사업 등을 전개해 석유파동의 위기를 무사히 극복해 나갔다.

수협은 1979년 3월 1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집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정회원에 가입돼 국제적으로도 우리 협동조합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80년대 안정기
이러한 제반 여건 속에서 80년대 성년기를 맞게 된 수협은 어업인의 소득증대와 복지향상을 위한 각종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어업인의 어업경영 및 생활전반을 지원하는 종합 협동조직체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80년대 초부터 일부 연안어장의 어획부진과 연근해 어장의 해양오염에 의한 양식수산물의 피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근해 어업인을 돕기 위해 수협은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강구, 이를 연차적으로 추진했다.

또 수협은 83년 9월 1일 업무개선위원회를 설치,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새수협운동을 적극 전개했다.

90년대 중흥기
90년대의 수협은 민주수협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 왔다. 수협은 그동안 조직정비를 꾸준히 단행해 중앙회(본부, 9개지회)와 87개 회원조합 및 1780개에 달하는 어촌계로 조직, 대어업인 봉사체제를 구축했다.

이와 같은 발전과 변화 속에서 민주화와 자율화 시대를 맞은 수협은 88년 12월 31일 개정된 새 수협법에 의해 조합장 직선제를 실시했으며 중앙회장도 민선 조합장의 손으로 90년도에 직접 선출함으로써 민주수협의 새 장을 열었다.

또 지상 17층 지하 5층 규모의 현 신천동 사옥에는 93년에 이주했다. 하지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IMF체제는 수협도 예외일 수 없어 98년부터 몰아친 구조조정과 금융환경변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협은 90년대를 마감하게 된다.

2000년대 시련과 재도약

새 천년 들어 수협은 창립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변화와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IMF 이후 강화된 금융재무기준으로 대표되는 금융산업의 급속한 환경변화에 수협은 불가피한 경영악화로 2001년 정부로부터 공적자금 총 1조1581억원을 지원받았다.

이로 인해 신용사업은 정부와 MOU를 체결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뉴스타트180운동’을 시작으로 2007년부터 2년 동안 ‘BLUE I 0708’운동을 펼쳐나가는 등 수협 경영정상화에 매진하고 있다.

수협은 2002년 1월말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해 수산물 유통개혁에 한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됐다. 4월 1일로 창립 47주년을 맞는 수협은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변혁을 통해 효율성과 전문성을 갖춘 명실상부한 어업인의 협동조직으로 거듭날 것이다.

21세기 신 해양시대에 걸맞게 수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국민경제에도 새로운 역할을 다하는 협동조합 본연의 임무와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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