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in수산’의 역할을 되새기며…
‘어업in수산’의 역할을 되새기며…
  • 수협중앙회
  • 승인 2015.05.07 16:21
  • 호수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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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언론 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이었다. 많은 나라가 언론에 대한 정부의 억압으로부터 독립성을 찾고 다수의 저널리스트들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취지하에 1993년 12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이날이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때를 즈음해 수협이 언로(言路)의 지향점을 찾기 위해 소식지로 만들고 있는 ‘어업in수산’이 창간 6주년을 맞아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도출됐다.

수산산업계의 대표 수산 전문 언론을 활성화하고 소통을 여는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이번 설문은 일부 수산전문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자체적인 조사에서 벗어나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했다. 특히 ‘어업in수산’을 구독 중인 어업인, 수협 전·현직 임직원, 유관기관 관계자 등 1586명이 참여했다.

설문결과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어업in수산’을 구독한후 응답자의 75.8%가 ‘수협이 어업인을 위한 조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는 것이다.  수협이 ‘어업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지역 수산업과 어업인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느끼는 응답자도 전체 72% 수준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어업in수산’을 통해‘수협 사업이 안정적인 어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는 응답도 68.2%였다. 이처럼 응답자 70%이상은 ‘어업in수산’이 수협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절반이 넘는 응답자들이 ‘월 구독료 3000원대에서 유가지로 전환해야한다’고 동의했다.

설문 결과를 놓고 볼 때 지난 4월1일 창간 6주년을 맞았던 ‘어업in수산’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어업in수산’은 어업인들에게 희망을 담기 위해 탄생했고 아직은 다소 미흡하지만 그 실현을 위해 묵묵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업in수산’은 수협과 수산 소식을 전달하는 단순 매체가 아닌 지난 1963년11월30일 발간됐던 수산전문지의 효시인 ‘수협소식’지의 정통성을 이어간다는데 의미를 담고 복간형태로 재 창간된 것이다. 당시 발간된 ‘수협소식’에 대한 정부관심이 지대했다는 것은 지면을 통해 알려진바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언로개방 역할은 이상적인 정치 구현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절대왕권 시대인 조선시대만 해도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등 삼사(三司)를 두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언관(言官)이라고 했다. 오늘날로 보면 관직에 있으면서 언론인의 구실을 했던 사람들이다. 오늘의 언론인은 일반인이지만 언관은 관료이면서 언론인에게 맡겨진 업무까지를 수행해야 하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언관의 임무는 왕의 잘못을 말해야 하며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을 통치자에게 전달해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해야 했다. 그리고 사악한 관료들을 퇴출시킬 때의 원칙도 설명했다. 언관은 왕의 잘못된 주장을 면전에서 비판하는 언관의 말을 면절(面折)이라 하고 왕의 잘못을 궁궐 마당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게 하는 것을 정쟁(庭諍)이라 하며 왕의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직접 말하는 것을 견거라 했다. 또 왕의 잘못을 주장하면서 궁궐의 난간을 부러뜨리는 것을 절함(折檻)이라고 하여 언관이 왕에게 이러한 무례를 저질러도 책임을 묻지 않는 특권을 부여했다. 폭군 연산군은 그런 것이 싫어서 사간원을 폐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언관과 오늘의 언론인 역할에 다른 점이 많지만 원칙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설문조사를 계기로 ‘어업in수산’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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