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법 개정, 협동체를 살려야 한다
수협법 개정, 협동체를 살려야 한다
  • 김병곤
  • 승인 2015.04.09 14:33
  • 호수 2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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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있다.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지게 만들어진 법은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는 이해 당사자들과 토론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더욱이 정부가 만들어낸 법률안은 최소한 그 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견이 존중돼야 하며 법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 진나라의 부국강병책(富國强兵策)을 쓴 유명한 정치가인 상앙이 법령 시행을 앞두고 행한 일화가 있다. 상앙은 새로운 법을 정해 놓았으나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정부를 믿게 하기 위해 한 가지 꾀를 냈다. 높이가 30자나 되는 거목을 남문에 세우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감히 옮기지 않았다. 다시 상금을 올리자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것을 북문으로 옮겼다. 상앙은 약속한대로 즉시 그에게 상금을 주며 거짓이 아님을 증명 한 후  신법을 공포했는데 일 년 후 백성들이 법령의 불편한 점을 토로했다. 태자가 그 법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상앙은 법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 상류층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태자의 보좌관과 그의 스승을 처형했다. 이후 백성들은 기꺼이 법령을 준수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사목지신(徙木之信)이다. 위정자가 백성을 속이지 않고 정부를 믿게 한다는 의미다.

최근 해양수산부가 수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 한 것을 보면 법 작동이 제대로 될것인지가 의문시된다. 협동조직이라는 통념이 배제된 조항이 너무 많다. 협동조합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법의 잣대로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협동조합법의 기본이념이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원리를 바탕으로 조합원을 어떻게 조화롭게 통제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번 수협법 개정의 핵심은 수협의 사업구조개편이다. 수협은행은 2001년 공적자금 지원 이후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협동체로서 기능이 상실됐고 국제회계기준(IFRS), 은행자본규제 강화(바젤Ⅲ) 등으로 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실정에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예산 확보 등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과 함께 수협법과 관계법 개정을 요청했던 것이다. 여기에 정부안은 중앙회가 100%지분을 소유하고 상법상 물적 분할 절차를 준용해 설립토록 했다. 이는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대목이다. 금융당국은 이에 곧바로 응답해야 한다.

더불어 개정 수협법안에는 협동조합으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운 조항이 부지기수다. 우선 중앙회의 경우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다. 경제대표, 전무이사를 두는 경제사업부문을 독립회계 단위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과거 수협의 지도·경제사업은 이미 독립사업부 형태로 운영했었다. 그러나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경영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이 불가피하다면 농협 사업구조개편 때 약 5조원 규모의 부족자본금을 지원했던 것과 같이 이에 상응하는 지원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있는 것은 조합장 비상임화다. 개정안에는 자산규모 기준으로 조합장을 비상임화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되면 조합장들의 쟁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은 무엇보다 조합원의 협동을 기조로 하는 리더자가 중요하다. 하나의 협동체에 여러명의 리더자가 존재한다면 결집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수협법 개정이 협동체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는 이제 입법예고 후 국회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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