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세계테마기행 촬영 후기>> 석유와 맞바꾼 바다를 찾아
EBS세계테마기행 촬영 후기>> 석유와 맞바꾼 바다를 찾아
  • 김동우
  • 승인 2014.12.11 16:17
  • 호수 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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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 아카바는 요르단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힌다.

“어디요? 요르단이요! 그럼 2주 뒤 출발인가요?”
시간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내 목소리가 작가에게 전해졌다. 첫 번째 TV출연은 이렇게 도둑같이 찾아왔다. 그것도 처음치고는 너무 거한 ‘EBS 세계테마기행’이라니. 가느다란 낚싯대에 걸려도 너무 큰 고기가 걸린 느낌이었다. 수협 입사 전 300여일 간 내 인생 다시 오지 않을 세계일주를 하고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란 책을 쓴 게 이번 촬영의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부다비를 경유해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도착하자마자 조연출을 향한 PD의 날선 고함소리를 듣고는 책을 쓰는 것만큼이나 이번 촬영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해외여행에서 집이 이토록 그립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이번 촬영의 핵심은 요르단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이어지는 ‘왕의 대로’를 탐험하는 내용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요르단의 핵심지역을 방문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고, 일정은 틀어지고 꺾이고, 빗나갔다. 그럴수록 담당 PD의 신경은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촬영만을 생각했다. 20일에서 17일로 줄어든 빠듯한 일정 안에 4편의 방송분량을 채우기 위한 사투가 반복됐다. 달리며 먹고 공부하며 찍고 또 달리고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불만을 대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뻔히 보이는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면 방송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PD가 느끼는 중압감과 고민을 곁에서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마음과 몸이 바빠졌다.

▲ 페트라는 거대한 암석을 통째로 다듬어 만든 것이다.
▲ 암만은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곳곳에 로마유적이 남아 있다.













암만에서의 촬영분량을 채우고, 촬영팀은 북으로 향했다. 시리아 국경에서 우린 한 난민 가정을 방문했다. 무슬림의 율법에 맞지 않게 한 여성이 촬영팀을 반겼다. 곱게 히잡을 쓰고 차를 내온 그녀는 내전으로 고향은 폐허가 됐고,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났다는 이야기를 목 놓아 했다. 그녀 옆에서 방긋 웃는 어린 자식들은 고향을 노래했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했다. 그들은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터전을 잃어버린 자식들이 소망하는 미래는 눈앞에 보이는 국경 너머에 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여행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눈에 밟히는 이들을 두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왕의 대로’는 과거 중동지역의 핵심 무역로 중 하나였다. 이 길에서 가장 번성했던 ‘페트라’는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장소다. 세계일주 중 마주한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위대하고 감동적인 장소 아니던가. 영화 ‘인디아나존스3’의 촬영지로 더 잘 알려진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도시로 1000년 넘게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바위를 통째로 다듬는 이들의 기술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 촬영 중 사막에 사는 한 베두인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페트라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고 촬영팀은 붉은 모래사막 ‘와디럼’을 뚫고 나갔다. 그렇게 남진을 계속해 드디어 요르단의 최남단 ‘아카바’에 도착했다. 이곳은 요르단 유일의 항구로 코발트빛 홍해가 한 눈에 펼쳐지는 절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의 전략적 전초지였던 아카바는 로렌스가 이끄는 아랍 비정규군에게 1917년 함락된다. 이후 주변국 사이에서 아카바에 대한 영토권 논란이 생기고, 요르단은 사막 지역을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내주고, 아카바 만에 인접한 16km의 연안을 차지하게 된다.

재미있는 건 요르단이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내준 땅에서 석유가 난다는 사실이다. 석유가 나지 않는 중동 국가 요르단에게 바다는 곧 생명이자 희망인 셈이다.

산들거리는 따스한 바람이 홍해를 일렁이게 하고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전쟁 같았던 촬영의 기억들이 푸른 물결 위에 하나둘 풀어진다.

“요르단에서 바다만큼 드라마틱한 장소가 또 있었을까? 검은 기름 대신 바다를 얻은 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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