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수산부흥4'
'응답하라 수산부흥4'
  • 수협중앙회
  • 승인 2014.06.06 18:06
  • 호수 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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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소식 ㅣ 1964년 4월 6일자 2면 기사

‘오직 백만 어민을 위해 봉사’

합리적 운영으로 날로 번영하는 수협
수협 사업 분장과 경영실적 분석 기사



1964년 4월 창립 2주년의 수협중앙회 사업 분장과 경영실적은 어떠했을까. ‘수협소식’ 8호인 1964년 4월 6일자 2면에 이러한 궁금증을 일소에 해소할 수 있는 기사가 실렸다.

수협중앙회 1963년도 연차보고서를 기획기사로 내보냈다. ‘본회의 업적’이라는 편집자 주가 붙은 이 기사는 수협의 사업부문별 경영실적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편집자 주에서 “수협의 63년도 사업목표는 어민의 소득증진과 나아가서는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2차년도 수산정책사업에 적극 부응하고 자가 체제의 강화와 신용사업의 확장을 비롯하여 행정당국의 주요 정책사업에 있어서 어민의 이익을 반영시키는데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신용사업의 체제 확립과 경제사업 및 지도사업의 확장, 수협법 개정에 의한 소비도시에의 수협공판장 진출의 가능화 등 광범한 협동조합 사업 확충에 힘씀으로써 어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하였으며 재정운영에 있어서는 수입내 지출의 실현주의 원칙에 입각한 경영합리화에 노력하여 5백46만원의 흑자운영을 나타냈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직 백만 어민을 위해 봉사’라는 타이틀에 ‘합리적 운영으로 날로 번영하는 수협’이라는 부제를 붙여 한해 사업 결산을 분석했다.

기사를 시작하는 발문에서 보면 9개 도지부와 103개의 회원조합, 1905개소의 어촌계 등 방대한 지방조직을 확보해 합리적인 운영을 꾀하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어 사업부문별로 분석했다. ‘수협소식’에 소개된 사업은 ‘지도사업’, ‘구매사업’, ‘판매사업’,  ‘이용사업’, ‘신용사업’, ‘공제사업’, ‘청산업무’로 대별했다.

우선 ‘지도사업’은 국고보조 95만7천원과 수협중앙회 부담 2백15만3천원 등 총 3백11만원의 재원으로 회원조합 임직원과 어촌교도원의 훈련 지원, 어촌 마을문고 설치를 지원했다고 적시했다. 특히 ‘수협소식’과 ‘어민’지 발간은 도서민들로 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매사업’은 당초 5천7백만원의 사업계획 대비 해태용 자재 등에 22% 초과한 7천50만7천원의 자재를 적기에 공급했다고 명시했다.

‘판매사업’은 부산, 여수, 목포 등 3개지구에 건어물 위판장을, 영광에는 선어 위탁판매장을 개설해 위판사업을 확대했으며 전국의 위판량은 4만1천41만톤에 16억1천8백만원의 성적을 올렸다고 적었다.

‘이용사업’은 5백90만3천원으로 4개소의 제빙공장을 운영해 사업이익 1백10만원으로 계획대비 50% 수익률로 저조한 상태다고 지적했다.

‘신용사업’은 1963년 1월1일부터 업무를 개시했다고 밝히고 63년도 책정된 재정자금 3억1천6백89만7천원으로 영어자금, 어선건조 및 태풍피해복구 어업공동시설자금을 융자대출하였다.

또한 농협에서 차입한 금융자금 1억8천7백82만원으로 해태 해조류 수집, 양식위판 가공 등 경제사업자금 외에 과거 산은과 농협에서 취급하여 오던 수산자금 12억1천1백94만8천원 중 재정자금 1억8천73만8천원을 계승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공제사업’은 공제기금적립은 8천8백97만1천원이며 어선가입도 3396척으로 전국보유어선 4만3천여척에 비하면 빈약한 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청산업무’는 부채청산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하고 비업무용 재산 공매처분, 채권추심, 어대금 미수 등을 회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기사의 전체적인 내용에서 볼 때 수협의 현재 업무는 창립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당시에도 지도사업과 신용사업의 확장에 주력하고 공제사업은 신상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발견된다.

또한 지도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도서 보급사업이 수협에서 발간하고 있는 ‘수협소식’과 ‘어민’지가 주류를 이루며 어업인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수협은행의 뿌리인 신용사업이 1963년 1월 1일부터 시작됐다는 것과 수협의 신용업무가 시작되기 전에는 농협과 산업은행에서 어업인들을 지원했으며 당시에도 자기자본 확충에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당시의 전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어선은 4만3천여척이었고 현재 1993개인 어촌계 수를 제외하고 도지부와 회원조합 수 모두 현재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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