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춰 본다
바람과 구름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춰 본다
  • 김동우
  • 승인 2014.05.22 17:22
  • 호수 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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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홍도 깃대봉(365m)


천연기념물(170호)을 발로 밟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관광객들은 절로 탄성을 내뱉는다. 세월과 비바람 그리고 파도가 더해진 기막힌 절경에 길고 긴 시간의 아득함이 서려있다.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선 경외감이 묻어난다. 서해남부해상 끝자락에 위치한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흔치 않은 곳이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쉴 자리를 찾아 누울 때쯤이면 1개의 유인도와 19개의 무인도는 붉게 빛나는 ‘용의’(龍衣)를 걸쳐 입는다. 섬의 이름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홍도의 일몰은 단박에 ‘붉을 홍’(紅)을 떠올리게 하는 황홀한 색이다.

홍도 최고봉인 깃대봉(365m)은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 사량도 지리산과 더불어 섬에 있는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유람선을 타고 섬을 일주하는 관광코스가 홍도의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깃대봉 트레킹은 유람선에서 느낄 수 없는 장쾌한 감동을 선사해준다.

깃대봉은 요즘 시쳇말로 ‘착한 산’이다. 홍도 1구 마을에서는 1시간(2km), 2구 마을에서는 40분 가량(1.3km)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깃대봉을 오르면 1년 365일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속설이 있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평생 한번 꼭 와보고 싶어 하는 장소다.

흑산초교 홍도분교에서 시작하는 트레킹은 잘 정비된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1 전망대를 거쳐 제2 전망대까지 오르면 개미나 누에를 닮았다는 홍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섬이 하나의 몸을 하고 있는 아담한 섬 마을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낙엽이 쌓인 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연인의 길’을 만난다. 이 길은 사계절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길로 자연의 정취가 물씬 풍겨난다.

각기 다른 뿌리가 하나의 나무가 된 연리지를 지나면 ‘숨골재’에 닿는다. 숨골재란 이름의 유례가 재미있다. 예전에 한 주민이 절구공이로 쓸 나무를 베다 실수로 이곳에 빠뜨려 버렸는데 다음날 바다에 나가보니 어제 빠뜨린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곳을 바다 밑으로 뚫려 있는 굴이라 해 숨골재굴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숨골재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며 지금은 주민들이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숨골재 일부를 나무와 흙으로 메워 버린 상태다.

소쩍새 노래가 울려 퍼지는 길은 깊고 푸르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삐져나온 햇살이 등산로 이곳저곳에 생각지도 못한 패턴을 만들어 놓는다. 명과 암이 만들어 놓는 자연의 조화를 감상하는 것도 홍도 트레킹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다.

▲ 홍도의 그림같은 일몰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길 한쪽에서 가는 봄을 아쉬움으로 바라본다. 한참 지각한 붉은 동백꽃을 지그시 바라보며 카메라 렌즈를 가져가 내년을 기약해 본다. 깃대봉에 이르는 길은 아늑하고 아기자기하다. 또 홍도에 대한 다채롭고 속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길이 오르막 내리막 하며 산길의 묘미를 더해주는 사이 키 작은 나무들이 시야를 열어준다. 한 시간 남짓한 산행의 목적지 깃대봉 정상석이 아담한 체구로 방문자들을 반겨준다. 파란 색이 겹겹이 더해진 짙은 청록색 바다 너머에 흑산도가 먼발치 눈길을 사로잡는다.

목포를 넘어 흑산도에서 잠시 숨을 고른 동풍이 홍도에 닿는다.

“바람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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