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창립 52주년 발자취
수협 창립 52주년 발자취
  • 김병곤
  • 승인 2014.04.03 13:13
  • 호수 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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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의 깃발 아래 최고의 협동조합으로 미래 백년을 열다

‘수산부국’의 창립 기치로 ‘수산부흥’의 이정표 세워
고난과 역경 뚫고 어업인과 함께 협동운동 실천 사업·조직, 혁신적 개편 추진도

수협이 창립 52주년을 맞았다. 수협 창립을 주도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의장이 당시 수산을 기치로 ‘수산부국’을 꿈꾸었다면 박근혜정부에 들어서 52주년을 맞은 수협은 ‘수산부흥’을 향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가고 있다.

수협은 지난해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 설립을 주도하며 어업인을 포함한 140만 전후방 연관산업 종사자들의 결속을 이뤄냈다.

수협은 어업인의 자조조직이자 수산분야 최대 규모의 단체로서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의 내실을 다지고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나갈 방침이다.

중앙회 구조개편 작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경제사업 중심의 협동조합으로 변모하고, 신용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협동조합은행으로서의 기능을 확대하여 수산부흥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어업인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각종 지원 사업을 강화하고 어업인교육문화복지재단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할 방침이다. 새로운 반 백년을 향해 변함없이 전진하는 수협의 지난 역사를 짚어본다.

광복 후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산업기반이 황폐화된 불모지였다. 이 시기 우리 수산업은 국민들의 식량과 생계를 책임지는 소중한 산업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며 근대화의 기틀을 다잡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업인들을 조직화해 수산업의 근대화를 이끌어갈 시대적 소명을 안고 1962년 4월 1일 발족한다.

이때 수협의 발족과 함께 어업인의 위상도 한껏 높아진다. 1969년 4월 1일, 농민의 날도 없던 당시 어민의 날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것이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의장이 사기진작에 직접 나설 정도로 어업인과 수산업, 그리고 수협의 역할은 지대했다.

1970년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끈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수협은 어촌계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조직력과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더 큰 성장을 구가한다.

자체자금조성에 노력하면서 1976년부터는 상호금융 업무를 개시하는 등 어촌경제 발전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수협은 이 시기에 국제적인 협동조합운동에도 동참한다. 1979년 국제협동조합연맹의 회원가입 승인을 통해 정회원으로 가입하며 세계무대로 행동반경을 넓힌다.

1982년 제2차 수협 장기발전 계획은 어가경제의 안정적 기반조성과 더불어 회원조합의 책임경영과 자립을 골자로 추진된다. 이 시기는 전산화 도입으로 신용사업의 혁신이 일어난다. 1984년 온라인예금업무가 개시되고 1988년 신탁업무가 추가된데 이어 1989년에는 전자계산소 신축에 나서는 등 신용사업의 탄탄한 기반이 조성된다.  수산물 유통체계도 확고해졌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사회에 불어온 민주화의 훈풍은 중앙회장과 조합장을 직접 선출하는 시대를 열었다. 1990년, 수협중앙회 직선제 회장 선거가 실시되고 수협의 민주화는 꽃을 활짝 피운다. 민주화와 자율화의 숙원을 이룬 수협은 1990년을 맞아 진정한 도약의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1990년 ‘3조원 자체자금 조성운동’,  1993년에는 잠실 현 청사를 완공하며 자체청사 마련, 1997년에는 협동조합 교육의 요람인 천안연수원을 개원하면서 수협은 장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인적역량 제고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민주화의 훈풍을 타고 온 규제철폐 정책으로 수산업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대표적으로 수협 위판장을 이용하던 의무적인 상장제도가 1997년 7월 자유 판매제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협동조합의 근간인 경제사업의 기반을 흔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어닥친 1997년 외환위기는 수협에 경영위기를 불러와 2001년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2010년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의 통합은 위기를 극복해 협동조합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온 수협의 노력과 험난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업인의 노력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수산업 선도국가인 대한민국은 2009년 국제협동조합 가입 이래 최초로 ICA수산위원회 의장국이 된다.

이종구 회장은 ICA수산위원장으로서 우리나라 수협의 발전 경험을 세계 어업인과 공유하고,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협동조합의 역할을 강조하며 ‘서울선언’ 채택 및 ‘세계 수협의 날’ 제정을 이끌어 냈다. 대한민국 수협은 달라진 우리 수산업의 국제적 위상을 알리며 국격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해냈다. 이같은 한국 수협의 공헌은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지난해 이종구 회장은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다시 한번 ICA 수산위원장으로 선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수협은 변화하는 수산업 지형과 대내외 환경에 맞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전체 수산 분야 종사자들의 의지를 결집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면서 다시 한번 수산업 대표 조직으로서 위상을 확인한다.

2012년 11월 ‘전국 수산인 한마음 전진대회’를 개최하며 해양수산부 재출범을 이끌어낸 것에 이어 1년 후인 2013년 11월에는 대한민국 수산 역사상 최초로 전후방 산업인들을 결집하는 한국수산산업총연합회가 출범하는 산파 역할을 해낸 것이다.

특히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고도의 융복합을 추구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6차 수산산업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미래 수산분야 발전을 종사자들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위한 시도라는 점은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창립 52주년을 맞아 수협은 협동조합의 본질이자 핵심인 경제사업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신용사업은 안정적인 자본 확충을 통해 협동조합 수익센터로서의 기능 회복을 위한 구조개편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연대와 상생을 핵심가치로 하는 협동조합이야말로 불황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받게 된 것이다.

수협 역시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과 근본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 어업인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국가와 국민, 사회에 대한 공헌을 확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방침이다.

수협은 수산산업의 발전을 선도하고 협동의 깃발 아래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며 최고의 협동조합으로서 미래 백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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