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탕과 칼국수의 극적상봉
해물탕과 칼국수의 극적상봉
  • 김상수
  • 승인 2012.04.26 11:22
  • 호수 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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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꾸네 모리국수’ -구룡포 어업인들의 속풀이 전용에서 관광음식으로


좁은 골목 안에 옹색하게 들어선 실내,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주문을 끝낸 손님들은 두 벽에 걸쳐진 걸개 시화에 눈길을 보낸다. ‘…육십 년대 보릿고개 같은 어한기 / 뱃사람들이 팔다 남은 새우며 삼식이 아구를 가지고와 / 국수와 함께 끓여 먹어 모리라 했다는 / 뻑뻑한 국물 속에 / 가라앉은 옛 시절을 건져 올리면…’


김영식 시인의 <모리국수>라는 제목의 시 전반부. 구룡포 까꾸네 모리국수에 대한 설명과 역사가 들어있음에 부엌에서 국수를 끓여 내오는 동안 읽어 볼만하다.


실내엔 둥근 탁자 세 개가 전부. 알든 모르든 서로 붙어 앉다시피 한 손님들은 가운데 놓인 큼직한 들통 속에 든 칼국수와 해물을 건져 올리며 오로지 먹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우선 놀라운 것은 그 양이 엄청 많다는 것이요, 칼국수가 반 해물 반이란 재료구성에 또 한번 놀란다. 부엌 한쪽 들통에는 새벽에 구룡포수협 위판장에서 받아와 미리 준비해 놓은 수산물이 끓여지고 다른 들통에서는 칼국수가 익어간다. 이 둘을 합해 다시 끓여야 손님상에 오를 수 있단다.


까꾸네 모리국수 맛 주인공은 그날그날 구룡포수협 위판장에 넘쳐나는 수산물 중 너덧 가지. 아귀가 들어가기도 하고, 곰치가 잔뜩 들어있을 때도 있으며 그 귀한 대게가 들통을 차지하기도 한다. 고춧가루 듬뿍, 파, 다진 마늘이 양념이요, 속 시원케 해주는 콩나물은 고명인 듯 들어간다. 기본 국물 맛을 내는 것은 새우거나 홍합, 미더덕 등. 혹은 이들 중 두 가지를 함께 넣어 끓여내기도 한다.

이런 수산물을 들통 속에 몰아넣기에 ‘모리’요, ‘내도 모른데이’해서 혹은 많다는 뜻의 일본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단골도 있다.

명칭 유래야 어찌 되었든 걸쭉하면서도 얼큰한 국물 맛과 함께 쉴 사이 없이 건져 먹는 해물 맛이 특히 좋고, 후루룩 넘어가는 국수 맛도 별난데 요리는 칠순을 앞둔 이옥순 할머니와 대를 이은 아들이 하지만 맛의 원조를 들자면 구룡포항 ‘老어부’들이라 했다.

새벽판장에 올리고 남은 수산물을 들고 와 밤샘조업에 더부룩한 ‘속을 풀자’며 면발 굵은 국수와 함께 끓여 달라 청함에 말을 들어주다 보니 별다른 이름 없이 ‘국수’로 불렸던 흔한 음식이 오늘의 ‘까꾸네 모리국수’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설명. 속만 풀어준 게 아니라 푸짐한 양에 한동안 뱃속이 꺼지지 않을 정도였단다.

그렇다면 ‘까꾸’는 무슨 말인가 궁금해 하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은데 이 할머니의 막내딸 별명이란다. 찾아온 어부들이 ‘까꿍까꿍’ 어르다 발음이 변해 ‘까꾸네’가 되었다며 웃는다.

손님에 따라 해물이 그리 많이 들어갔으니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있다는데 오로지 구수한 맛만 나기에 이옥순 할머니와 대를 이은 아들의 특별한 솜씨다. 요즘에야 관광객들이 식탁을 차지한다지만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옛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단골손님은 대부분 왕년에 이름께나 날렸던 老어부들이라고도 했다.


작은 그릇 세 개가 들통 옆에 자리한다. 그 하나에 모리국수를 건져 먹고 다른 하나는 김치그릇이요, 나머지는 생선뼈며 홍합껍질 따위를 골라내라고 내놓는 것이란다.

우선 두툼 푸짐한 미역치 살 몇 점을 발라먹고 홍합 속살을 빼어먹다 보니 시장기가 가심에 국물을 조금 넣고 칼국수와 콩나물을 함께 덜어 맛본다.

맛도 맛이려니와 술술 넘어간다! 내친 김에 국물을 조금 더 붓고 면발과 콩나물도 듬뿍 덜어 먹는다. 함께 파는 탁주 맛이 궁금했지만, 들어갈 자리가 없기에 다음을 기약했다.

까꾸네 모리국수 
054) 276-5433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9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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