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 그리 독도에 억지를 부리는가
왜 왜 그리 독도에 억지를 부리는가
  • 김병곤
  • 승인 2011.04.07 16:40
  • 호수 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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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진정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나라인가. 대지진 참상에 우리는 힘을 내라고 응원했고 국민들도 성금 모금에 주저하지 않았다. 잠시 역사적 문제를 접어두고 우리 어업인들도 1억4500여만원을 모았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달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중학교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켰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록한 교과서가 대폭 확대되는 등 억지 주장을 펼쳤다.

독도 분쟁을 지역화하려는 일본의 꼼수와 야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천안함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에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으며 우리를 자극했다.

‘외교청서’에는 “역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독도에 관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일관 된다”고 명기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본이다. 자신들의 큰 불행에 우리 국민들이 아픔을 함께 하고 있는 가운데 독도를 슬그머니 자국영토라고 교과서에 기술한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일본은 한국의 동맹국인가. 시쳇말로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일본의 주요목적은 영토에 대한 야욕과 어업권 획득에 있다. 과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다음 세대에 잘못된 역사관과 영토관을 주입하는 것은 자폐적인 국가관이자 엄연한 범죄행위다.

어디까지나 독도는 역사적, 국제법적, 실효적 지배 측면에서도 역시 우리 영토다. 우리 정부의 명쾌하고 단호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96년 한일 어업협정 때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을 놓고  정부는 독도가 우리 영토이기 때문에 분쟁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너무 미온적 대처였다.

때문에 정부 입장이 현실적으로 관철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독도가 양국의 EEZ 관할의 중복지역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 따라서 독도의 역사성 규명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독도는 정부가 지켰던 것이 아니라 우리 어업인들이  지켜왔다.

3백여년 전 어부 안용복은 오늘날 울릉도와 독도가 분명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를 밝혀 일본정부로부터 서계(書契)를 받아온 인물이다. 안용복은 어부 40명과 울릉도 주변에서 고기잡이 중에 일본 어부를 쫓아내다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다. 그는 일본 정부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 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따져 조선 영토임을 확인시켰다.

해방이후에도 독도를 지키는 사람 역시 어업인 이었다. 1953년 울릉도 어업인 홍순칠 대장은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하고 일본의 독도 침탈에 맞서 그 곳을 지켰고 독도에 한국령(韓國領)을 새겨 넣기도 했다.
이후 1965년 대구가 고향인 최종덕씨는 독도에 들어가 집을 짓고 조업을 하며 지난 1981년 독도주민 1호로 기록돼 있다.

독도는 이처럼 동해상에 떠있는 더 이상 작은 섬이 아니다. 독도는 영토이자, 조상으로부터 지켜온 민족의 자존심이고 어업인들의 혼이 담겨져 있는 상징이다.

영토는 민족을 지탱하는 그릇이며 국가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영토가 없는 민족은 국가로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우리의 자존감을 살려내야 한다.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일본에 이제는 말보다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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