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힌 고기를 먹는 사람들
삭힌 고기를 먹는 사람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1.04.04 18:51
  • 호수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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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렬 수산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림수산식품부는 3월의 수산물로 홍어와 미역을 선정했다. 홍어는 주로 삭혀서 먹는다. 어떤 일간지의 기자는 세상 사람을 홍어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과 홍어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 단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 어중간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일리가 있다. 홍어의 지독한 냄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홍어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고, 일단 그 냄새를 극복하고 홍어의 참맛을 알게 된 사람은 당연히 홍어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밖에 없을 만큼 홍어의 중독성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김치와 된장을 먹는 것처럼 홍어를 삭혀서 먹는 습관도 우리나라만이 가진 고유의 음식문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럽의 사람들에게 “보통 사람은 냄새에 질려 도망을 칠 것이며, 용기와 모험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코를 움켜쥐고 억지로 목구멍을 넘길 수는 있겠지만 삼킨 후에 뱃속에서 올라오는 지독한 냄새에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음식”인 삭힌 홍어를 먹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그들은 십중 팔구 한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이야기할 것이다.

홍어는 영어로 스케이트(skate) 또는 레이(ray)라고 하는데 영양이 풍부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어서 서양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대부분의 서양사람들은 주로 날개부분만을 잘라내 요리한 스케이트윙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싱싱한 홍어를 일부러 삭혀 먹는 종족이 있으니 바로 바이킹의 후예인 아이슬랜드 사람들이다. 이들은 홍어뿐만 아니라 상어와 청어까지 삭혀서 먹는다.

삭힌 홍어를 아이슬랜드 말로는 빌투 스퀴투(Viltu Skotu)라 하는데 영어로는 ‘썩은 홍어(rotten skate)’라고 알려져 있다. 삭히는 법과 먹는 방법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홍어의 내장을 제거하여 토막낸 후 흐르는 물에 씻어 진액과 피를 제거한 다음 바닷가 자갈밭에 묻고 큰 돌을 덮어둔다.

여름에는 7주, 겨울에는 2-3달 가량 삭힌다. 이렇게 삭힌 홍어를 홍어회처럼 그냥 먹기도 하고 홍어찜처럼 삶아서 스테이크로 먹기도 한다. 삭힌 홍어는 아이슬랜드 전통음식으로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두 번은 챙겨 먹는  평상식이었으나 요즘은 크리스마스시즌에 먹는 특별한 음식(정확히 12월 23일날 먹는 음식)이 되었다.

삭힌 상어는 아이슬랜드 말로 하칼(H?karl)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역시 ‘발효한 상어(fermented shark)’ 또는 ‘썩은 상어(rotten shark)’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 상어를 잡았을 때 바닷가 바위틈에 끼워두고는 햇빛과 해풍을 맞히면서 삭힌 후 토막내어서 운반하여 먹었던 데 유래한 식품이라고 한다.

홍어와 상어는 같은 연골어류라서 삭힐 때 암모니아가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 삭힌 상어는 향과 맛이 홍어보다 훨씬 강하다. 따라서 삭힌 상어는 아이슬랜드에서도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다. 삭힌 홍어와 상어는 포랍랏(Porrablot)이라는 명절에 포라마투르(Porramatur) 라는 아이슬랜드 전통상차림의 일부로 제공된다.

요즘 들어서 유럽에서도 건강과 미용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삭힌 생선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쉬르스트뢰밍(surstr·mming)이라는 삭힌 청어는 봄에 잡은 작은 청어를 소금에 절여서 약 한달 가량 삭힌 것이다. 아이슬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바이킹의 지배하에 있었던 북유럽 국가에서 널리 알려진 식품이다.

이 요리는 샌드위치의 속재료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삭힌 청어 통조림이 출시되고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미묘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기도 하지만, 북유럽인들의 바이킹족에 대한 자긍심과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상품화한데 성공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 외에 삭힌 홍어를 먹는 종족이 지구상에 또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바이킹이라는 민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뿐만 아니라 독특한 음식문화를 공유한데서 오는 야릇한 호감을 느꼈다. 바이킹의 후예들에게 동아시아 끝인 한반도의 서남쪽 지방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지독한 냄새의 삭힌 홍어를 즐겨 먹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면, 그들도 이와 비슷한 관심과 호감을 가질 것이다.

정부는 수 년 전부터 한식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한식문화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한식 세계화사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독특하고 우수한 음식문화가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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