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군 칠산바다 그 소문난 ‘굴비자랑’
전남 영광군 칠산바다 그 소문난 ‘굴비자랑’
  • 배석환
  • 승인 2022.08.31 21:56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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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 위판장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참조기
법성포 위판장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참조기
조선시대부터 토사와 갯흙이 밀려와 갯바닥이 돋아 올라왔다는 법성포구
조선시대부터 토사와 갯흙이 밀려와 갯바닥이 돋아 올라왔다는 법성포구
연안산 참조기를 엮어내는 모습
연안산 참조기를 엮어내는 모습
실뱀장어는 봄한철 영광어업인들에게 쏠쏠한 소득을 올려준다
실뱀장어는 봄한철 영광어업인들에게 쏠쏠한 소득을 올려준다

1997년
전남 영광군은 ‘사백(四白)’의 고장으로도 불렸다. 이는 쌀과 눈, 소금에 누에고치가 많다 해 붙은 별명인데 이런 영광군이 온 나라에 알려지게 된데에는 ‘영광굴비’라는 특산물이 큰 비중을 차지할 터이다. 더불어 소문난 포구였던 법성포며 이 나라 칠대 어장 중 하나였던 ‘칠산바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 이름 자체에서 불교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법성포’는 짐작대로 백제에 불교를 전해줬다는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가 맨처음에 들어왔던 곳이라 해 그리 불렸다고 한다. 법성창으로 더 유명했던 이 포구는 남도 각 고을의 바다와 땅에서 나는 소출 중 나라에 올릴 것을 가려내 조창에 보관해 두었다가 이듬해 4월에서 5월이면 서른 아홉 척의 운반선에 나눠 싣고 뱃길을 따라 한양의 마포나루까지 실어냈던 구실을 해낸 곳이다. 칠십년대 말까지만 해도 법성포구에는 칠산바다를 중심으로 한 참조기 어장에 출어했다가 만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넉넉한 양을 잡아 나온 참조기 잡이 어부들이 꽤나 흥청거렸다. 영광 어부들은 물론 외지 어선들을 타고 들어온 남정네들이 호기를 부렸던 만큼 참조기파시 때면 평상시 법성포 인구의 배나 되는 낯선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법성포 다랑가지에서 굴비를 만드는 시기는 3월에서 6월까지다. 이때는 주로 유자망 어선들이 칠산바다와 멀게는 흑산도, 추자도 근해에서 잡아낸 참조기로 만들어 내는데 그 양이 80% 이상 이란다. 물론 이 나라 참조기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형기선저인망과 대형선망 그리고 연근해 안강망어선들이지만 이 시기에 영광군수협 법성포 위판장에 나오는 참조기는 유자망 어업인들이 비늘이 벗겨질까 조심스레 취급해낸 ‘유자망 조기’라는 애기다.
이렇게 사들인 참조기를 영광굴비로 만들 때 먼저 하는 일은 비늘을 없애는 것이다. 뱃속 내장까지 염기가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함이니 서너번씩 비늘을 훑어내는 이 손질은 배 부분에 집중된다.
다음 단계는 염장인데 가장 보편적인 섭장간과 염수법, 염건법 등 어떤 방법으로 염장을 하던지 일정기간의 염장이 끝나면 큰 것은 열 마리를 한 두름으로 작은 것은 스무 마리를 한 두름으로 엮는다. 예전에는 새끼줄로 엮었으나 이제는 비닐줄 사이에 새끼줄을 한 가닥 섞어 엮어낸다. 
이런 영광굴비가 변함없는 영광군 수산업의 얼굴이지만 영광 어업인들이 바다에 거는 기대는 영광굴비가 다가 아니다. 염산면처럼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곁에 둔 어업인들은 바지락 양식이나 백합양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또한 영광 바다에는 해상가옥형 ‘뗏마’가 즐비한데 실뱀장어를 잡으려는 어업인들이다. 봄 한철 쏠쏠한 소득원이 돼주는 실뱀장어 잡이는 5월 초면 끝이 나는데 이 기간 내내 선상에서 생활하면서 ’금값과 견준다‘는 실뱀장어 잡이에 몰두하는 것이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372호(1997년 4월 발행) 

자동선별기를 통해 참조기를 분리하고 있는 영광군수협 조기위판장 현장
자동선별기를 통해 참조기를 분리하고 있는 영광군수협 조기위판장 현장
경매에 나온 참조기
경매에 나온 참조기
법성포구 선착장
법성포구 선착장
경매가 끝난 조기를 염장하고 있는 모습
경매가 끝난 조기를 염장하고 있는 모습
법성포 전경
법성포 전경

2016년
바닷가 마을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짠 내음이 진동을 하고 법성포구 뒤편으로 길게 늘어선 굴비 판매점들 앞에 태양빛을 담은 굴비들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 오래전에 와 보았던 법성포의 모습이 아니다. 밤이라서가 아니다. 지형이 변했다.
간척사업이 있었다고 한다. 기존 법성포 해안선을 따라 평지가 생겼다. 그리고 그 안에 여러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다. 저 멀리는 깜깜하기만 했던 밤 풍경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다리가 생겼다. 백수읍과 홍농읍을 이어주고 있는 영광대교다. 과거에는 배로 다니거나 한참을 돌아가야만 했던 거리를 걸어서도 가게 됐다.
법성포의 새벽은 조업을 끝내고 돌아온 어선들의 엔진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굴비의 고장이라 갑판 위로 가득 쌓여 있을 참조기를 생각하겠지만 꽃게가 주인공이다. 그렇다고 참조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참조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꽃게가 서해 앞바다에 지천으로 깔려 있을 시기라 그러하다.
법성포 선착장에 줄지어 늘어선 수산물들은 곧바로 법성포에 자리잡은 영광군 수협위판장으로 향한다. 위판장이 두 곳이다. 항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위판장이 있고 굴비의 고장답게 참조기를 선별하고 곧바로 위판하는 장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선별기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박스에 가득 담긴 참조기를 부어 놓으면 자동으로 운행되는 공정을 차례차례 지나 무게별로 분리가 된다. 법성포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어획된 참조기들이 집합을 하는 곳이 이곳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추어지기 전엔 수를 세기도 힘든 참조기를 모두 인력으로 감별해야 했다. 그래서 무게에 대한 오차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법성포 굴비라는 이름이 쓰인 판매품은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특히 영광군수협의 염장 공정은 철저한 위생관리하에 진행된다. 멸균실을 방불케하는 시스템이다. 옛 정취가 없어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5명의 인원이 염장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작업에 들어가기에 양에 따라 인원이 달라진다고 한다. 위판장에서 보았던 선별기가 이곳에도 존재한다. 경매를 거친 참조기를 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곧바로 염장만 주문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크기별로 나누어진 참조기는 공장 바닥에 길게 늘어선 스테인레스 바닥 위에 구간별로 나눠 펼친다. 그리고 천일염으로 염장을 시작한다. 보기엔 그냥 흩뿌리는 것 같지만 기술이 없으면 골고루 염장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염장이 끝나면 이제 10마리 혹은 20마리씩 엮는 작업이 진행된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양이라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절반의 참조기가 횡과 열을 맞춰 가지런히 엮여 있다.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보기 힘든 참조기(大)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렇게 큰 참조기는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정도면 가격이 수백만 원이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이렇게 여러 공정과 노력으로 우리들이 특별한 날 먹는 명품 굴비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제야 법성포 굴비가 으뜸인 이유를 알 것 같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534호(2016년 11~12월 발행)

2022년
1919년 설립된 영광군수협은 현재 16개 어촌계가 소속돼 있으며 싱싱한 조기를 위판해 천년전통의 영광굴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양식과 바지락양식 또한 그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지속적으로 어업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참조기를 위판하는 법성 위판장과 선어를 주로 위판하는 법성 위생 위판장, 활어를 위판하는 수산물 위판장, 계마위판장에서 위판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참조기 위판량은 7932톤이며 586억 원의 위판고를 달성했고 올해 상반기는 413톤의 위판량을 기록했다. 참조기 이외 어종으로는 뱀장어(활어), 민어(선어), 꽃게(선어), 병어(선어)가 주로 위판되고 있다. 뱀장어의 경우 지난해 위판량은 1631톤(361억 원), 민어 49톤(4억 8500만 원), 꽃게 300톤(28억 원), 병어 47톤(11억 9200만 원)가량이다. 
참조기 파시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칠산 바다는 현재 참조기 생산량이 미미해 참조기를 어획하는 영광어업인들은 멀리 제주와 여수 홍도 사이 바다에서 참조기를 어획하고 있으며 참조기가 이동하는 길목을 따라 서해 여러 곳으로도 뱃머리를 향하고 있다. 

우리바다는 지난 1963년 12월 대어민 지도를 목적으로 창간한 ‘어민’지(誌)가 그 시작이다. 이후 1975년 1월 ‘새어민’으로 1996년 5월 ‘우리바다’로 제호를 변경했다. 지난해 웹진으로 전환해 제564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어업in수산은 1975년 발행된 ‘새어민’부터 순차적으로 기사를 발췌해 최근 우리바다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어촌·어업인의 변화된 생활상을 매월 2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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