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대게부터 오징어까지 부지런한 어업인들의 터전 축산항
영덕대게부터 오징어까지 부지런한 어업인들의 터전 축산항
  • 배석환
  • 승인 2022.08.03 19:38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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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항 전경
축산항 전경
축산 앞바다에서 정치망 조업을 하고 있는 어업인들
축산 앞바다에서 정치망 조업을 하고 있는 어업인들
발 디딜 틈없이 오징어와 잡어가 가득찬 어선
발 디딜 틈없이 오징어와 잡어가 가득찬 어선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모습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모습

1997년
사람들은 그 사는 터를 닮아가기 마련이라 했던가. 경북 영덕군 축산(丑山) 사람들의 심성은 소를 닮아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내는 그 건실함과 부지런함이 영덕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정치망 어업인들은 축산항을 오가는 외지인들도 인정하는 부지런함의 대명사다. 언제나 축산항의 새아침을 가장 먼저 열고 정치망 물을 보러 간다.
새벽 4시. 협신호 사람들을 비롯해 축산항에 선적을 두고 있는 열두 척의 정치망 어선을 타는 어업인들은 찬바람이 돌면서 점점 떨치기 싫어지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항구로 모여든다. 지난 이삼일 간 파도가 사나워지면서 공을 쳤으니 사흘씩이나 그물을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9월 중순부터 보름이 넘도록 오징어가 터지면서 축산마을 전체가 덕장 천지가 됐지만 10월부터 찬바람이 잠깐 이는듯하더니 거짓말처럼 오징어 떼가 삼분의 일 쯤으로 줄어들고 있다. 염려를 뒤로하고 걷어 올린 첫 번째 그물은 많지 않은 잡어와 아랫바다로 미쳐 내려가지 못하고 잡혀 올라온 수백 마리의 오징어가 전부였다.
두 번째도 방어며 오징어가 올라왔지만 원하던 것만큼은 아니다. 세 번째 그물에서 터졌다. 만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만큼은 그물 속에 그대로 남겨놓고 올 정도의 방어떼가 그물 속에 들어있다. 이날 협신호의 위판액은 195만 원. 삼사일 전 300만~400만 원 하던 위판량에 비하면 서운한 감은 있지만 현상유지는 넘어섰다 한다.
축산항의 활기를 좌우하는 정치망 어선은 열 두 척이다. 근처 강구항에 선적을 둔 정치망 어선이 서른 여덟 척에 이르니 어선 세력으로 보면 견줄 바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강구항과 위판량에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까닭은 1974년부터 동해구기선저인망 열 두 척이 상주하다 시피하며 온갖 수산물을 어획하고 있고 특히 선동오징어를 축산항에 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축산수협의 위판액은 200억 원을 넘어서 이 수협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위판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징어로 재미를 보고 있는 축산항이지만 과거 정어리며 쥐치에 노가리 떼가 몰려들어 풍어를 이루기도 했다. 그리고 축산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영덕대게다. 일제 강점기에서 60년대 후반까지 대게통조림공장이 있었을 만큼 왕돌짬 부근에서 자망그물로 건져온 대게는 서울에서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올 정도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355호(1997년 11월 발행)

죽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축산항 전경
죽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축산항 전경
새벽조업과 위판을 준비하고 있는 축산항 모습
새벽조업과 위판을 준비하고 있는 축산항 모습
조업을 끝내고 축산항으로 돌아오고 있는 어선
조업을 끝내고 축산항으로 돌아오고 있는 어선
청어로 가득한 저인망 어선
청어로 가득한 저인망 어선

2014년
부지런한 뱃사람들 이라지만 아직은 너무 이른 새벽 5시. 어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때아닌 이른 아침을 맞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싱싱하게 살아있는 활어들이다. 커다란 양동이 안에서, 혹은 배안에 마련된 수조에서 다시 바다로 내달리려는 듯 파닥이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5시 30분, 한겨울의 별미 찹쌀떡, 메밀묵을 외칠때 사용되었던 손목종이 울린다. 그 소리는 칼바람으로 가득찬 위판장 구석구석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모든 것이 깨어나고 동시에 시작되는 신호인 것이다. 한창현 경매사와 눈빛을 교환하는 중간도매인들이 신호에 맞춰 가격을 적는다. 조그마한 나무판자가 이리저리 오간다. 표찰식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정치망과 저인망 어선이 축산항을 차지한다. 때론 선상에서 직접 경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잠깐 한눈을 팔면 경매에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정치망 어선의 경우 활어가 대부분이다. 방어의 힘찬 물세례에 주위 사람들의 옷이 젖어든다. 
방어가 힘찬 활동량을 보여준다면 양으로 승부하는 어종도 있다. 전갱이, 숭어, 물가자미 등이다. 저인망은 전갱이와 고등어새끼, 그리고 청어 등 선어로 가득차 있다. 플라스틱 삽으로 퍼 담아도 그 양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장 인기있는 어종은 역시 물가자미다. 이곳 축산항은 영덕을 대표하는 물가자미 축제를 개최할 만큼 물가지로 유명하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가듯 첫 경매가 40여 분만에 종료되었다. 그런데도 중간도매인들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오징어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매사 사무실에 들어서는 어업인들 모두 하나 같이 같은 물음을 던진다. ‘오늘 오징어배 들어오는가?’라며 명절날 손주 기다리 듯 한다. 하지만 오징어배는 오는 들어오지 않는다. 조업을 나간 배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 여기 배들이 조업을 나가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동해로 조업을 나온 배들도 들어왔기 때문에 오징어경매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조업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 과학적인 접근으로 따지면 수온과 조류가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보다 큰 원인은 중국어선들의 남획이다. 조류를 따라 움직이는 오징어의 특성상 일정하게 잡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동해에서, 때론 서해에서 많은 어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우리나라 바다로 유입되는 조류의 시작점에서 중국어선들이 무분별하게 잡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축산항위판장은 300억 경매가를 돌파했는데 그 일등 공신이 오징어라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지난해 경매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7시 30분, 보통이면 멀리 나가있던 저인망 어선들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런데 위판장은 바람소리만 들려온다. 2시간 뒤에나 청어, 전갱이 배들이 들어온단다. 해가 중천에 뜬 10시, 멀리서 보면 중국 어선처럼 생기기도 한 저인망 어선 2척이 항구로 들어와 정박을 한다. 배안에는 하얀 비늘로 감싼 엄청난 양의 생선이 가득차 있다. 일정한 크기의 플라스틱 바구니에 실어 담는다. 바구니를 세기 시작하는데 100개가 넘어가니 포기하기에 이른다.
올해 청어는 풍년이다. 지난해 대비 어획량이 4배 이상 증가해 10월 한 달 2000톤이 어획됐다고 한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본래 청어는 7~8월에 조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9월 이후부터 청어가 잡히기 시작하더니 때아닌 풍년이라고 한다. 
대형 정치망 어선과 저인망 어선이 청어를 어획하는데 그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경매는 박스 숫자로 알린다고 한다. 잡히는 양의 30% 정도가 과메기를 만드는데 쓰이고 나머지는 사료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10%만 과메기를 만드는데 쓰였던 과거보다는 월등히 많은 양이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543호(2014년 11~12월 발행)

2022년
축산항은 1924년 3월 조성됐다. 항구를 앞쪽 죽도산이 있는 곳은 본래 섬으로 나중에 섬을 이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오징어를 비롯해 대게, 물가자미 등이 많이 나와 축산항을 기반으로 1924년 축산어업조합이 설립됐다. 이후 1962년 축산어업협동조합으로 개칭됐고 2011년 영덕북부수산업협동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축산항을 새벽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축산항을 통해 이뤄진 위판량은 5384톤 가량이며 금액으로는 201억 원 정도다. 올 상반기는 1292톤, 49억 원의 위판고를 달성 중이다. 위판량이 가장 많은 어종은 오징어, 방어, 고등어 순이다. 
축산항에 위판을 하고 있는 어선수는 총 70여 척으로 이중 정치망 어선수는 현재 9척이다. 1994년 12척에 비해 3척이 줄어들었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정치망 어선들은 여전히 오징어를 가장 많이 어획하고 있다.

우리바다는 지난 1963년 12월 대어민 지도를 목적으로 창간한 ‘어민’지(誌)가 그 시작이다. 이후 1975년 1월 ‘새어민’으로 1996년 5월 ‘우리바다’로 제호를 변경했다. 지난해 웹진으로 전환해 제564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어업in수산은 1975년 발행된 ‘새어민’부터 순차적으로 기사를 발췌해 최근 우리바다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어촌·어업인의 변화된 생활상을 매월 2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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