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공적자금 수혈은 IMF 관리체제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
수협, 공적자금 수혈은 IMF 관리체제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
  • 김병곤
  • 승인 2022.06.15 20:54
  • 호수 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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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 살리기 운동’ 등 전개에도 불구 지원 불가피
IMF사태, 대다수 금융기관 합병과 퇴출 수난 감내
정부, 신용사업부문 자회사 분리로 건전성 유지 요구
수협 공적자금 투입으로 협동조직 자율성 상실 시대 맞아

수협중앙회가 공적자금이라는 낙인을 마침내 지워냈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 풍전등화와 같던 수협이 나라 빚을 예정보다 6년이나 앞당겨 갚는 건실한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같은 성과는 수협을 넘어 전국 어업인과 전체 수산업의 저력과 의지를 보여준 쾌거라 할만하다.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 어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되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어업인수산이 공적자금 투입의 배경에서부터 경영정상화 과정 그리고 조기상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고 상환 이후 수협의 미래 청사진을 세 차례에 걸쳐 지면에 반영한다.

당시 故 노무현 해수부장관은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故 노무현 해수부장관은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여러 차례 간담회를 가졌다.
상환합의서 개정에 서명하고 있는 임준택 수협중앙회 회장(왼쪽)과 김태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외른쪽)
상환합의서 개정에 서명하고 있는 임준택 수협중앙회 회장(왼쪽)과 김태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외른쪽)

1997년 11월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는 결국 IMF(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외환사정 악화로 전 산업계가 파국에 직면했고 모든 금융권은 태풍의 중심에 놓였다. 대다수의 금융기관은 합병과 퇴출이라는 수난을 감내야 했다. 정부 지원이 없이는 재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용사업을 하는 수협 역시 자유로울순 없었다. 
수협은 경영대책반을 편성해 IMF 관리체제에서 살아 남기위한 노력을 강구했다. 대손충당금과 유가증권 평가충당금을 100% 적립하고 재원을 확보하는 등 BIS 자기자본 비율 8%의 충족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재무 구조개선과 ‘수협살리기 운동’ 전개 등의 경영대책도 수립했다. 수산금융채권 700억 원을 발행해 여유자금을 확충하고 고정자산 재평가로 1271억 원을 조성해 적립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가혹 했다. 수협 신용사업에서 1997년 397억 원과 1998년 3283억 원의 미처리 결손금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수협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정부에 우선출자의 형태로 5700억 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산업구조조정에 관한 법(금산법)과 국유재산의 현물출자에 관한 법이 문제였다.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은 이에 해당되지 않아 법개정이 시급했던 것이다. 수협이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이어서 사업 형태를 바꾸지 않고서는 관련법 시행령에 수협을 공적자금 투여 대상기관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금산법과 현물출자에 관한 법 등의 시행령 개정이 아닌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고 차관과 일반은행을 통한 차입의 형태로 수협에게 긴급 수혈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2000년 3월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결정이 내려졌지만 재정경제부가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은행 같은 역할을 하는 수협 신용사업부문의 자회사 분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수협은 대외 신용도 저하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故 노무현 대통령이 “신용사업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지 않는 대신 회계 분리 등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하자”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지도와 신용, 경제 등 모든 사업부문을 분리했다. 이처럼 여러 논의 끝에 수협은 독특한 구조로 공적자금을 받았다. 공적자금의 투입 원인은 외환위기로 일반기업의 지급보증이나 대출 부실의 여파였지 수산자금의 영향은 미미했다. 계획조선 등 수산 관련자금의 부실은 정부로부터 보전을 받았다. 주식회사가 아닌 수협중앙회는 주식소각이 아닌 상환을 전제로 한 수혈이었다.
수협경영정상화 방안 담은 수협법 개정과 예금보험공사의 수협 신용-경제 분리를 위한 재산 실사를 통해 총 부실규모 9887억 원으로 확정, 이 가운데 9412억 원이 신용사업부문에서 발생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로써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열고 1조 1581억 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의결했다. 
마침내 2001년 4월 25일 수협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총 1조 1581억 원 가운데 1조 1095억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기에 이르렀다. 나머지 486억 원은 그해 12월 31일에 지원됐다.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 이후의 수협은 정체성 상실을 불러왔다. 지도경제신용사업의 분리로 직원들의 인사이동의 방화벽 등으로 ‘한 지붕 세 가족’의 살림을 해야만 했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들의 인적 결합체이자 자신들의 이익을 스스로 확보하는 자조와 자주를 본질로 하는 경제 단체다. 하지만 수협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협동조직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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