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와 어업인, 수산업의 가치 지켜온 ‘수협 60년’
우리 바다와 어업인, 수산업의 가치 지켜온 ‘수협 60년’
  • 조현미
  • 승인 2022.03.31 19:23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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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며 쉼 없이 질주
바다 너머 미래를 향한 새로운 수협 100년의 도약 준비
2062년 4월1일, 어업인 지원 예산규모 1조 원 육박
어촌지역, 기후변화와 건강위기 좋은 피난처로 각광

1962년 4월 1일, 어업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창립된 대한민국 수협이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지난 60년을 넘어 바다 너머 미래를 향한 새로운 수협 100년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수협이 지난 60년간 우리 바다와 어업인, 수산업의 가치를 지키고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되짚어 본다.

이슈로 보는 수협 60년

◆ 1960년대

우선 발족 초기인 1960년대는 정착기로 볼 수 있다. 즉 이 기간에는 수협업무의 기초가 되는 ‘수협법’을 제정하고 중앙회와 회원조합 조직을 정비해 수협이 정착을 하는 기간이었다. 
발족 당시 수협은 86개의 지구별 수협과 11개의 업종별 수협, 2개 제조업 수협 등 총 99개의 회원조합과 중앙회로 구성됐다.

1963년 산업은행과 농협중앙회로부터 수산 관련 자금을 인수받아 여신업무를 개시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수산정책자금 일원화 조치에 따라 수협중앙회에서 수산자금을 취급할 수 있게 됐고 같은해 어업용 유류 직배사업업무를 개시하며 대 어업인 지원을 위한 제반 여건도 충실하게 마련됐다.

◆ 1970년대

1970년대는 고도 성장기였다.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이든지 발족 후 10년 간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게 되는데 수협 경우 발족 후 20년 차에 들어서는 1970년대에 가징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즉 1962~1971년 간 수협의 사업비 규모가 14배 증가했으나 1972~1981년 간은 무려 15배가 증가한 것이다. 수협중앙회 조직도 이 시기에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인력면에서는 1962년 141명에서 909명으로 늘어난 것은 물론 사업규모도 18억 원에서 614억 원으로 증가했다.

한편 이 시기에는 수산물이 국가 주요 수출품으로 1976년 수출업무를 개시한 이후 2년 후에 중앙회 수출 실적 1000만 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그해 12월에는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산업화의 기반이 미미했던 시절 수산업이 근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과 기여를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1980년대

1980년대는 사업구조 개편기였다. 특히 이 기간에는 공제 및 상호금융사업의 실적이 경제사업을 추월하여 수협의 새로운 성장 동력원으로 등장하는 등 수협의 사업구조가 오늘날과 비슷하게 개편된 기간이었다. 이 때 수협은 통신의 발달과 전산화 도입으로 업무처리에 혁신을 맞게 된 시기로 예금 온라인, 양도성예금증서, 신탁업무 등의 업무가 개시됐다.

1970년에 이어 1980년대도 수산물 수출은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여 1986년에는 수출 4000만 달러를 돌파했다. 수출업무를 개시한지 10년 만에 달성한 뜻깊은 성과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한민국에 민주화 분위기가 확산돼 협동조합에도 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88년 12월 수협법 개정을 통해 임명제 조합장제도가 사라지고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하게 된 것이다. 1990년 4월 19일에 이르러서야 수협에서도 민선 조합장의 손으로 첫 민선중앙회장을 뽑게 됐다.

◆ 1990년대

수협은 서울 경운동 청사를 마감하고 현재의 잠실청사로 이전하면서 수협방송을 개국해 어업인을 위한 교육과 정보전달의 역할을 강화하게 된다. 1998년에는 천안연수원을 준공해 현재 수협 임직원과 전국 수산인들의 교육의 요람으로 터를 잡았다.

그러나 1990년대는 수협의 시련기였다. 즉 1980~199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금융자유화와 개방화 등으로 수협도 부실채권이 크게 증가하게 됐고 1997년 11월에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됐으며 수협은 2001년에 예금보험공사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등 시련기를 겪었다.

◆ 2000년대

2000년대는 경영혁신 착수기였다. 즉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을 만큼 악화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수협 비전을 수립하고 경제사업 혁신 운동을 선포하는 등 경영혁신을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한 기간이었다.

특히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최대 수산물도매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을 인수하는 쾌거를 이룬다. 1988년부터 인수를 추진한 끝에 15년 만에 성공해 현재는 도심의 수산물을 공급하고 국내외 관광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이 시기는 수협의 어촌 지원사업을 확정하던 때다. 어업인 복지 증진과 어촌 사화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는 어업인교육문화복지재단(현 수협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2010년 어황방송을 개국해 수산정보와 해황정보 등을 적기에 제공해 어업인들이 양질의 정보를 통해 생산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도 만들었다.

◆ 2010년대

2010년대는 수협의 사업구조개편을 완료하고 수협은행이 독립법인으로 독립하는 등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노력을 시작했다. 이러한 수협은행 발족에는 약 2조 원의 자금이 투입됐는데 예금보험공사의 우선출자금(공적자금) 1조 1581억 원, 수산금융채권 발행 8000억 원, 회원조합 출자금 928억 원, 임직원 우선출자금 240억 원 등으로 충당됐다.

수협은행이 출범하게 되면서 자본조달 경로가 다양화돼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됐고 공적자금이 전액 상환하게 될 경우 수협은행의 배당금을 농협과 같이 수협의 고유목적 사업에 지원할 수 있게 되면서 협동조합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2020년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이 착공 8년 만에 동작구청으로부터 사용승인을 얻게 되면서 2020년 말 완성된다. 현대화된 노량진수산시장은 옛 노량진수산시장 옆 부지에 위치하며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118.346㎡로 축구장 20개 규모. 수산물 연간 물동량 5만 4255톤, 이용 인원 하루 평균 3만 명에 이르는 수도권 최대의 수산물 도매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1997년 말의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부실규모가 증가했던 회원조합의 경영도 정상화에 이르렀다. 2002년 97개 조합 가운데 정상조합이 39곳에 불과했다면 2020년에는 91개 조합 가운데 정상조합은 88곳으로 자산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수협중앙회 역시 경영이 크게 개선되어 공적자금 조기상환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중앙회는 창립 이래 2년 연속 역대 최고 수익을 고쳐쓰고 있기 때문이다. 1조 1581억 원의 공적자금 중 3398억 원을 상환하여 8183억 원이 남아 있으나, 현재 공적자금 상환 추진단 등을 중심으로 상환 재원 조달계획을 마련하고 예금보험공사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조기 상환을 위한 실무회의를 추진하고 있어 조기상환이 조만간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수협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통구조를 혁신해 나가고 있다. 온라인과 홈쇼핑을 통한 판매를 확대하면서 판매액도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또 올해 산지에서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온라인 수산물 판매 플랫폼 구축에 착수하는 등 최신 트렌드에 발맞춰 수산물 유통구조를 혁신해 나가는 중이다.

◆ 40년후 미리 그려본 수협 모습

2062년 4월 1일 수협이 창립 100년을 맞았다. 

이미 통일한국이 된 대한민국 노량진수산시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펄떡거리는 물고기의 경매 현장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임직원들은 오래전 본사가 이전된 바다 내음 가득한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출근하며 어업인들의 권익보호를 고민한다. 

60년이 넘은 노량진수산시장을 다시 현대화를 끝내고 단순하게 소비자에게 싱싱한 수산물을 파는 공간이 아닌 대한민국 수산시장을 대표하는 메카는 물론 세계적인 수산물 관광명소로 변모했다.

수협은 그동안 어업인 지원에 걸림돌로 작용한 공적자금을 완전 해소하고 어업인 지원을 위한 재정을 확보했다. 2020년대후반 2~3000억 원대에 불과했던 어업인 지원 예산규모는 1조 원에 육박했다. 

수협은행은 중앙회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자본조달과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100조 원 규모의 사업규모로 수산업 특화 금융지주로 자리를 매김했다. 수산금융의 탁월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수협 자체적으로 어업인 연금제도를 도입해 조합원들을 지원하고 어업인들의 노후의 삶의 질을 높였다. 경제사업 역시 물량이나 가공과 식품의 완성도에서 수산계의 최고를 자랑하는 수산식품전문 기업으로 변모했다. 

수협은 수산산업 창업스타트업 지원으로 어촌은 청년인구 유입으로 고령화 현상이 크게 개선됐다. 특히 수협은 식량안보 다변화를 위해 해외 양식어장을 개척, 해외에서 직접 양식을 통해 국내와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촌지역은 상대적으로 기후변화와 건강위기에서 지역민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좋은 피난처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협은 종합적으로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어업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협동 공동체를 복원하고 행복추구를 가능케 하며 어업과 어촌이 가진 최고의 가치를 제대로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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