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의 바다로 퍼져나간 ‘김’
삼면의 바다로 퍼져나간 ‘김’
  • 배석환
  • 승인 2022.03.23 17:41
  • 호수 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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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바다 – 김

우리바다는 지난 1963년 12월 대어민 지도를 목적으로 창간한 ‘어민’지(誌)가 그 시작이다. 이후 1975년 1월 ‘새어민’으로 1996년 5월 ‘우리바다’로 제호를 변경했다. 지난해 웹진으로 전환해 제564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어업in수산은 1975년 발행된 ‘새어민’부터 순차적으로 기사를 발췌해 최근 우리바다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어촌·어업인의 변화된 생활상을 매월 2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 1998년  

김을 식용했던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남아있는데 이후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도 김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김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었다. 바닷가 돌에 붙은 김을 채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양식기술도 보잘 것 없어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초기의 양식방법이랬자 갯벌에 섶을 꽂아두거나 대나무로 발을 엮어서 거기 붙은 김을 수확하는 것이 고작. 이러한 원시적인 양식법은 최근까지도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점차 개량된 양식법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쪽으로 발을 엮어 고정시키는 방법을 ‘떼발’이라 하는데 이 ‘떼발’은 점차 지네발, 뜬흘림발, 그물발, 뜬그물발 등으로 개량됐다. 요즘 김 양식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뜬그물발식은 김발이 간만에 따라 움직이도록 고안된 것으로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 뜬그물발식 양식법의 보급으로 김 양식장은 내만에서 외해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해안 일대는 ‘물반, 부이반’의 바다밭으로 변모하게 됐다.

양식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김 가공설비의 도입은 김 양식장을 삼면의 바다로 퍼뜨리는 계기가 됐다. 양식기술이 일천했던 시절에는 다른 지역에서 김을 생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을 생산한다 해도 김 가공기술자들이 완도, 진도, 신안 등지에 집중돼 있어 기껏 생산해봤자 가공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김 완제품을 만들어내면서 여건이 맞으면 어디서나 김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서해안에 이어 최근에는 동해안 지역에서도 김이 출하돼 김 생산은 말 그대로 전국시대에 접어 들었다.

이처럼 생산 지역이 넓어지다보니 김의 품종과 색도 다양해졌는데 지역에 따라 구분하는 방법 외에도 참김, 방사무늬김, 돌김, 등으로 구별되기도 한다. 김은 한해성 해조류로 9월 중순에 채묘를 시작해서 11월부터 햇김을 출하하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맛과 때깔이 제일 좋을 때는 한창 추울 때인 1~2월경 출하한 김이다. 4~5월경까지도 출하는 계속되지만 날이 따뜻해 품질이 떨어진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358호(1998년 2월 발행)

■ 2018년 

국내 최대 김 생산지 중 한 곳인 전라남도 해남군. 잔잔한 파도와 낮은 수온, 그리고 깨끗한 수질이 김 양식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어업인들이 김 양식을 하고 있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어란항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김이 채취양이나 품질면에서 전국에서 손꼽히고 있다.

다른 어선들과 달리 김 채취 어선은 뱃머리가 삼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는 커다란 쇠붙이가 달려 있다. 이로인해 일반적인 어선이라면 족히 8명 정도가 탑승을 할 수 있는 크기지만 4명이면 정원 초과가 될 정도로 배 안에서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하다. 

어란항을 출발한 설민호도 3명이 전부다. 양식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5분 정도 달리니 바다가 온통 하얀 부표로 덮여 있어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초보 운전자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와 중에 각자의 양식장을 제대로 찾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엔진을 최대한 줄이고 천천히 양식장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설민호. 분명 사고가 날 것 같은데 김발이 달려있는 줄을 용케 찾아 끌어 올린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김. 동시에 선미쪽으로 이동하는 선원들. 그제야 뱃머리가 사다리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폭 2미터 정도의 김발이 어선의 옆쪽이 아닌 선미를 통해 반듯하게 올려진다. 

중간 정도에 설치된 쇠붙이는 김발의 김을 털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별다른 추가 작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순서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김이 배에 한 가득 차면 항구로 되돌아간다. 세상 쉬운 작업처럼 보이지만 여름부터 이어진 결과물이다.

김 채취는 찬바람이 불고 수온이 낮아지는 초겨울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다. 여름에는 김발을 모두 수거해 보수 작업에 들어가고 가을이면 모종을 해 보통 10월에 다시 양식장에 설치해 빠르면 11월에 채취를 한다. 

해남군 김 양식장의 대부분은 부유식 방법을 택하고 있다. 김발 끝에 부표를 달아 바닷속 일정한 깊이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부유식이라 한다. 다른 방식으로는 지주식이 있다. 긴 지주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바다 밑바닥에 박아 그 사이에 김발을 설치한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542호(2018년 9~10월호)

■ 2022년

김은 해조류 중에서도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수출하고 있는 김은 그 우수함을 인정받아 ‘한국의 슈퍼푸드’로 소개되며 이제는 세계인이 즐기는 수산물이 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산 김 생산량은 1억 4954만 속(1속 260g)으로 2020년산 1억 3978만 속보다 6.9%가량 증가했다. 또한 올해의 경우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전망했다. 최근 전남 일부 해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황백화 현상으로 물김 생산을 중단하는 어가들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전체 생산량은 큰 폭의 감소는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해남군의 경우 지난해 물김 위판량은 67만 4488자루(1자루 120kg)로 위판금액은 646억 8231만 원 정도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위판량 39만 6763자루로 위판금액 454억 6628만 원 가량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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