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지만 쓸모가 많은 섬 ‘흑산도’
부족하지만 쓸모가 많은 섬 ‘흑산도’
  • 배석환
  • 승인 2021.12.22 18:36
  • 호수 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보는 우리바다 – 흑산도

우리바다는 지난 1963년 12월 대어민 지도를 목적으로 창간한 ‘어민’지(誌)가 그 시작이다. 이후 1975년 1월 ‘새어민’으로 1996년 5월 ‘우리바다’로 제호를 변경했다. 지난해 웹진으로 전환해 제564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어업in수산은 1975년 발행된 ‘새어민’부터 순차적으로 기사를 발췌해 최근 우리바다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어촌·어업인의 변화된 생활상을 매월 2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 1995년 흑산도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뱃길로 97㎞. 서해 남단 청정해역 한가운데 떠 있는 흑산도는 피서철만 되면 항해시간 두 시간 안팎의 쾌속선이 하루 네 차례 이상 운항하지만 그 밖의 기간에는 다시 두 차례 정도만 운항해 가깝고도 먼 섬이라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흑산도에는 비가 뜸하고 그런만큼 식수 등 생활의 기본이 되는 용수가 귀해 물로인한 주민들의 고통이 심하다. 섬 값을 하느라 그럴까만은 지난 1985년 힘들게 마련한 저수지는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매말라 있기가 다반사다. 

정약전 선생이 신유사화 때 흑산도에 유배되면서 ‘자산어보’에 남겼듯이 흑산도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황금어장이다. 한때는 홍어로 지금은 오징어와 삼치로 많이 나는 어종에 차이가 있을 뿐, 그 양에 있어서는 한결같은 어획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흑산도를 흑산도로 만들어주는 홍어잡이는 점차 전설이 돼간다.

한 때는 흑산도하면 ‘홍탁’이라 해 잘 삭힌 홍어 한점과 탁주 한 사발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고 또 홍어하면 섬마을 흑산도를 연상했으나 이제 흑산도에서 홍어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50여 척이 넘는 홍어잡이 어선들이 잡아온 홍어가 위판장에 발디딜 틈도 없이 깔려 있었는데 지난해 홍어잡이에 나선 어선은 고작 네 척에 불과하고 그나마 올해는 나갈 수나 있을는지 미지수다. 

홍어가 우리네 밥상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반면 흑산도 양식어업은 나날이 성장을 하고 거듭하고 있다. 현재 흑산도에서 양식어업을 위한 해상가두리는 총 74.5㏊로 1㏊당 20칸의 수조가 있으니 총 6000칸의 수조가 흑산도 바다 위에 떠있다는 계산이다. 

이 수조마다 갓부화한 치어에서부터 출하를 앞둔 성어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양의 질 좋은 우럭이 어업인들의 보살핌 속에 성장하고 있다. 

더욱이 대둔도와 다물도 권역이 어촌종합개발사업 지역으로 선정, 어업 생산기반 시설과 다양한 소득원 개발, 환경개선 사업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 할 계획이어서 흑산도 어업인들에게 큰 힘이 되는 한편 사업의 초점이 각종 양식어업에 맞춰져 있어 앞으로 흑산도 양식어업은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기사발췌 : 새어민 제329호(1995년 9월 발행)

■ 2014년 흑산도

흑산도는 곳곳에 작은 마을들이 숨어 있다. 파란 하늘과 시퍼런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그렇게 이름 모를 마을 입구에 내려 걷기 시작한다. 수백 년 전에 사라진 절터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있는 흑산진리석탑을 지나 천년묵은 구렁이가 지나 간듯한 구불길에서 거친 숨을 내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오른 상라산 전망대. 흑산항을 중심으로 흑산도의 절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는 이유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흐르는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다시금 올라탄 순환버스. 해변 도로를 한참이나 달리다 보니 ‘자산어보’의 고향인 사리마을에 도착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천주교와 연류돼 유배되었을 당시 흑산도 근해 물고기 생태를 조사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학술지다.

그 당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과 가옥들이 새로이 지어져 잘 정돈돼 있다. 관광지로 변해 과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마을 선착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칠형제 섬이 또하나의 흑산도 비경을 자랑한다. 넓은 선착장 주변으로 마을 어촌계 주민들이 멸치를 가마솥에 직접 삶고 삶은 멸치를 말리는 모습이 오래전 정약전이 이곳에서 느꼈을 재미가 엿보인다.

조용한 섬마을 흑산도지만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때가 있다. 홍어잡이 어선들이 돌아올 때다. 며칠간 홍어잡이를 나섰던 6척의 홍어잡이 어선들이 속속 신안군수협 흑산도위판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크레인과 지게차를 동원해 귀하신 몸값 자랑하는 홍어를 위판장에 쏟아 붓는다. 미끌미끌한 곱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기에 스키를 타듯 사방으로 흩어진다. 곧바로 경매를 담당하는 인원들이 선별작업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홍어와 아귀를 분리한다. 그리고 저울을 가져와 본격적으로 홍어를 등급별로 분리한다. 1등급부터 6등급까지 무게별로 분리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홍어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끈적한 점액인 곱의 무게를 제외시켜야 한다. 자칫하면 등급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등급이라도 놓여지는 방법이 다르다. 배 부분이 보여지게 놓여지는 것과 등 부분이 보여지게 놓여짐에 따라 경매에서 가격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등급별로 모두 정렬이 되면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흑산도 홍어라는 바코드가 홍어 한 마리 마다 붙여진다. 비로써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몸이라는 증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종 보호를 위해 흑산도에 홍어잡이 허가를 받은 배는 6척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이 6척의 어획량에 따라 홍어의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흑산도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섬이 홍도다. 어미가 자식을 품듯 홍도를 품고 있다. 그래서 흑산도를 어미섬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흑산도에서 홍도를 가려면 배로 30여 분을 달려야 도착하며 하루에 2번 정도만 운행을 한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돼 있어 사소한 나뭇잎 하나도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홍도항 근처 1지구 마을은 무분별한 개발로 섬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옛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 두 개의 섬이 이어져 있는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큰 봉우리인 양산봉과 깃대봉을 기준으로 홍도1구와 2구로 나눠져 있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522호(2014년 11~12월호)

■ 2021년 흑산도

가수 이미자가 불렀던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울려퍼지는 흑산도는 관광어촌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22개 어촌계와 485명의 어촌계원이 흑산도 수산업을 이끌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조업을 나갈 수 있는 배가 없어 위기에 처했던 홍어잡이는 TAC 물량 추가 확보로 다시금 활기를 띠면서 현재 16척이 홍어잡이 허가를 받았고 10여 척 정도가 조업에 나서고 있으며 우럭 양식장도 지난해 보다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전복양식장과 각종 활어, 문어 등의 위판이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해 위판된 홍어는 376톤이며 금액으로는 58억 원 가량이다. 우럭의 경우는 1302톤, 191억 원 정도로 흑산도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업인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