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어장 개척 수산인들의 고귀한 희생 속 숨은 이야기
해외어장 개척 수산인들의 고귀한 희생 속 숨은 이야기
  • 배석환
  • 승인 2021.12.15 18:51
  • 호수 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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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문화마당 책소개

‘아버지의 바다’

◼ 저자: 김부상 

◼ 출판사: 해피북미디어

>> 책속으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하면 오백원짜리 지폐 일화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해외 자본가와 선박회사를 상대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내밀고는 선박 건조 계약금부터 달라, 그리해주면 그 돈으로 조선소를 지어 배를 만들어주겠다고 나선 무모한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서양보다 수백년이나 앞서 철갑선을 건조한 역사와 경험이 있으니 믿고 맡겨보라는 말도 안 되는 설득이 통하면서 시작된 성공 스토리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이 그것을 개인의 일화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고도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대목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김부상 작가의 신작 ‘아버지의 바다’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소설 속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과 정주영 회장이 겹치면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해외 어장 개척으로 조국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해 준 수산인들의 담대한 도전과 희생을 알아주는 국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즉에 사라진 오백원짜리 지폐가 있었다는 것도, 거기에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해외어장 개척 1호 어선 지남호가 있었고 그 덕분에 조선산업 같은 중후장대 산업이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조국을 오늘날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킨 것은 비단 이름난 재벌 기업가들만의 몫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바다는 1957년 지남호가 인도양 참치 시험조업을 성공하며 포문을 연 대한민국 수산업 해외진출의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일제의 수탈과 남북분단, 6.25전쟁 등 근현대사와 얽힌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주인공 일수는 지남호의 뒤를 이어 1963년 사모아 조업에 나선 지남2호에 몸을 싣는다. 작가는 주인공이 먼 바다로 나서기를 결심한 이후부터 겪는 사건과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수산인들에게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어장 개척의 배경과 역사를 차분히 풀어낸다.

소설 초반부에 주인공이 선장을 통해 듣는 제동산업 심상준 사장의 이야기는 우리 수산업계에도 이렇게 걸출한 선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실존 인물인 심 사장은 조국을 위해 외화를 벌어야겠다는 일념 속에 사업보국의 표상이 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조국에는 외화가 그 무엇보다도 귀한 마중물이었던 시절이다. 

논리적이면서도 당차게 미국을 상대하며 지원을 이끌어냈고 이를 견제하려는 일본의 집요한 방해에 맞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해외어장 진출을 일구어낸 이야기는 오백원 지폐 일화와 견줄만한 대목이다. 이렇게 시작된 해외어장 개척을 통해 1950년대 말부터 벌어들이기 시작한 막대한 외화는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 첨단에는 바로 일수와 같은 무수한 선원들의 땀과 눈물이 배인 것은 물론이다.

지남2호에서 일수는 선장을 비롯한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성장한다. 첫 승선에서 해외진출 사상 최대의 어획고를 올리는 짜릿한 경험까지 얻으며 마냥 순조롭게만 보이던 일수의 삶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삼각파도에 침몰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조류의 충돌 속에 날벼락처럼 나타난 삼각파도는 일수를 순식간에 죽음의 경계선으로 몰아간다.

실제로 1963년 12월 30일 남태평양에서 지남2호는 조난됐으며 선원 21명이 목숨을 잃었고 단 2명만이 극적으로 살아남은 대형 해난사고로 기록됐다. 소설 속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으로 생을 이어가게 된 일수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지남5호에 올라타면서 글은 마무리 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수처럼 목숨을 걸고 바다를 나선 숱한 수산인들의 희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아쉽게도 지금 거의 없다. 하지만 소설 속 일수가 살던 그 시절의 국민들은 지남2호의 비극을 내 일처럼 여기며 함께 슬퍼하고 유족을 위해 성금을 모았다.

정부와 국회도 나서서 국가 차원의 위령제를 열어 모두가 불의의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일수는 수산인들의 희생을 알아주고 그 아픔을 공감해주는 모습 속에서 위안을 얻고는 다시금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다로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에 직면하는 수산인들의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그 고귀한 희생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기억하는 이를 찾아보기란 여간 쉽지 않게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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