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인간의 공존 ‘남해 죽방렴’
바다와 인간의 공존 ‘남해 죽방렴’
  • 배석환
  • 승인 2021.10.20 18:57
  • 호수 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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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중요어업유산

글 싣는 순서 
1. 제주 해녀어업
2, 보성 뻘배어업
3. 남해 죽방렴어업
4. 신안 천일염업
5. 완도 지주식 김 양식업
6. 무안·신안 갯벌낙지 맨손어업
7. 하동·광양 섬진강 재첩잡이 손틀어업
8. 통영·거제 견내량 돌미역 재취어업
9. 울진·울릉 돌곽 떼배 채취어업
10. 부안 곰소 천일염업
11.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

어촌사회의 고령화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소중한 어업문화 중 상당부분이 젊은 계승자를 찾지 못해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 따라서 사라져가는 어촌의 고유한 문화를 발굴·보존 함은 물론 이를 통해 어촌 방문객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을 통해 어업문화 보전에 나서고 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이라 함은 오래 기간 동안 형성·진화해 왔으며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통적 어업활동 시스템으로 어촌 경관·문화 등 모든 유·무형의 자원을 의미한다. 현재 제1호로 지정된 ‘제주 해녀어업’을 시작으로 11개 어업이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됐다.

‘어업in수산’은 이러한 국가중요어업유산을 조명함으로써 소외되고 있는 어업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자 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조업방식을 원형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어업을 원시어업이라 부른다. 이러한 원시어업을 대표하는 것이 ‘남해 죽방렴’이다. 죽방렴은 물살이 드나드는 좁은 바다 물목에 대나무발 그물을 세워 물고기를 잡는 어업을 뜻한다. 특히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와 창선면 지족리 사이에 지족해협 죽방렴은 오랜세월 동안 전통방식을 유지하며 지금도 조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족해협은 시속 13~15㎞의 유속을 보이는데 이 속도는 전라남도 진도군의 울돌목 다음으로 물살의 흐름이 빠르다. 이는 지리적 특성 때문인데 중앙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져 물살이 거세진다. 이때 유속보다 느린 고기들이 유속을 이기지 못하고 밀려날 때 그 길목에 설치된 죽방렴으로 빨려 들어가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자연의 힘만으로 물고기를 어획하는 조상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죽방렴의 대부분이 지족해협에 존재하는 이유는 근처에서 대나무와 참나무를 조달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같은 남해군이지만 다른 지역은 죽방렴이 아닌 석방렴이 더 흔하다. 그 이유는 나무가 아닌 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방렴의 역사는 500년이 훌쩍 넘는다. 고려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시대까지 유사한 어법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고 1469년 경상도 속찬지리지 남해현조 편에 ‘남해 헌조 방전에서 석수어, 홍어, 문어가 산출된다’는 문구가 기독돼 있다. 또한 ‘만기요람(조선 순조 8년)’에 죽방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록돼 있다. 과거에는 죽방렴을 통해 계절별로 여러 어종들을 어획했는데 현재는 80% 이상이 멸치다. 현대적인 어구·어법으로 분리하자면 죽방렴은 일종의 정치망이다. 특징이 있다면 날개그물이 ‘V’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발통(원통), 세발, 양익(날개)로 이뤄져 있다. 발통은 물고기가 해류에 밀려 들어가 갇히는 곳으로 둘레에 대나무발을 촘촘하게 둘러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한다. 세발은 원통과 날개 사이 구간으로 물고기가 들어가는 문이다. 조류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그 간격이 다르다. 양익은 어군을 원통으로 유도하고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죽방렴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바닷속에 돌을 쌓아야 한다. 실제 수중 사진을 보면 바닥에서 4~5m 올라와 있는 돌담이 세월을 거쳐 완성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돌과 돌사이에 참나무를 박아 지지대를 세운다. 다음으로 좌우 날개 기둥을 대나무살로 단단하게 엮어 거센 물살에도 견딜 수 있게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구조는 단시간 내 만들어질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지족해협의 특성을 알고 계절에 맞춰 잡을 수 있는 어종들도 알고 있어야 가능한 구조다. 실제 지족해협에 설치돼 있는 22기의 죽방렴은 멀리서 보면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디테일을 살펴보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같은 위치에 나란히 만들어져 있는 죽방렴의 날개 길이가 다르고 중심축이 다르다. 

지족해협은 섬 쪽으로 갈수록 물의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섬에 가까운 죽방렴 날개 길이가 다른쪽 보다 더 길게 만들어진다. 일직선으로 날개를 설치하면 와류가 많이 일어나 들어오는 물고기양이 줄어든다. 물줄기가 부드럽게 빠져나가야 더 많은 양의 물고기를 어획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둥근 모양의 발통은 어종에 따라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어종이 벽을 따라 회유하는 습성을 이용해 대나무발을 촘촘하게 만들어 놓았다.

죽방렴을 통해 어획되는 멸치 생산량은 국내 총 멸치 생산량 중 2%에 불과하다. 

상처가 적고 비린내가 다른 멸치에 비해 적게 나는 특징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죽방렴이 향후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계절에 따라 어획량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고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따라 어획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방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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