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그물에 박혀 올라온 은빛 보물 ‘멸치’
흐르는 그물에 박혀 올라온 은빛 보물 ‘멸치’
  • 배석환
  • 승인 2021.06.16 18:59
  • 호수 5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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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바다 - 근해 유자망 멸치조업

◆ 1999년 근해유자망 멸치조업

유망어업은 말 그대로 그물을 흐르게 해 고기를 잡는 어업이다. 보통 유자망이라는 용어가 쓰이는데 자망은 물고기가 그물코에 꽂히도록 해 어획하는 그물이니 유자망어업은 수면이나 수면 가까이에 어구를 표류시켜 그물에 꽂힌 고기를 어획하는 어업이라 할 수 있겠다. 유자망으로 고기를 잡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물고기 떼가 지나는 길목에 그물을 펼쳐놓으면 끝이다. 

이러한 유자망어업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기업적인 어업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남해안이다. 특히 여수는 근해유망수협의 본소가 있는 곳으로 대부분 멸치를 어획하고 있다. 봄멸치잡이가 한창인 여수 선적 영광호를 타고 그 현장을 찾았다.
여덟명의 선원을 태운 24톤급 멸치유자망어선 영광호가 정확히 새벽 네 시에 여수 국동항을 출발했다. 안도와 금오도 인근 바다에서 어군이 형성돼 요며칠 이 곳에서 줄곧 조업을 하고 있다.

영광호 선주인 송종길씨는 바다가 아닌 어군탐지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멸치 떼가 지나가는 길목에 정확하게 그물을 내려야 만족할 만한 어획고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투망을 지시한다. 선장의 지시만 기다리던 선원들은 일사분란한 동작으로 부이를 던져놓는다.

1킬로미터도 넘는 그물이 바다로 빨려 들어간다. 

장시간의 기다림이 끝나고 양망이 시작됐다. 기대에는 못미치지만 이 정도면 70~80상자는 나올 것 같다. 요즘 한 상자(26~27㎏) 위판가격이 7000원 선이다. 최소한 1만원은 돼야 인건비를 제외하고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럭저럭 양망을 마친 선원들은 귀항하는 뱃길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귀항을하면 쟁여둔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탈망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제법 따가운 햇볕 아래서 두꺼운 이른바 ‘갑바’라 불리는 방수복을 입고 멸치 비늘로 범벅이 된 채 몇 시간씩 탈망을 하다보면 힘께나 쓴다는 장정들도 녹초가 되기 일쑤.

이렇게 탈망한 멸치를 상자에 담아 위판장까지 옮겨야 비로소 긴 하루가 저문다. 서둘러 돌아가 씻고 내일을 준비하는 선원들. 6월까지 성어기이기 때문에 날씨만 좋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는 출항한다.

이번에는 제발 멸치값이 좀 올라야 할텐데…. 그런 소박한 희망들 속에서 여수 앞바다의 멸치잡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374호(1999년 6월 1일 발행)

◆ 2021년 근해유자망 멸치조업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지만 새벽공기는 무척이나 쌀쌀하다. 조업에 나선 ‘207 윤경호’는 엔진소리만 요란하고 어떤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들 아침 조업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수 금오도 부근 바다는 이시기 근해유자망 어선들이 멸치떼와 한판 승부를 펼친다. 승부의 규칙은 간단하다. 어군탐지기를 보고 멸치떼의 움직임을 예측해 그 길목에 그물을 설치하면 된다. 이러한 방식은 수십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어선들마다 어획량이 다른 것은 선장들의 노하우가 더해져서다. 

아침해가 뜰 무렵 멸치 떼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하루 어획량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김종헌선장의 목소리가 휴식을 취하던 선원들을 깨운다. 선수 위로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차양막이 설치되고 부표를 던지니 바닷속으로 그물이 빨려 들어간다. 차양막은 선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멸치의 산패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얼마나 긴 그물인지 설치하는데만 수십 여분이 흐른다. “이제부터 바다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첫 양망에 많이 올라오면 조업을 끝내고 바로 털기에 들어가지만 신통치 않으면 한번 더 투망을 해야 합니다”라며 김종헌 선장이 신통치 않은 그물을 보며 한 숨을 내쉰다.

한 번 투망한 그물을 끌어올리는데 선원 6명이 달려들어도 무려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끌어올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힘든 털기 작업이 남아있다. 많게는 4시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고된 멸치조업이다. 

그물코에 박혀있는 멸치들이 선원들의 거친 숨소리에 맞춰 하늘 위로 치솟는다. 분리된 멸치는 박스에 담겨져 차곡차곡 쌓인다. 멸치가 담겨진 박스 한 개의 무게는 대략 28㎏~30㎏ 정도다. 

생김새는 썩 좋지 않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은빛 비늘이 살아있는 멸치가 아니다. 그 크기가 대멸 이상으로 여수에서는 ‘징어리’라 불리며 갓 잡은 징어리는 쌈밥으로해서 먹는다. 

이제 다시 여수수협 국동항 위판장으로 향한다. 오후 4시 김영남 경매사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멸치경매가 시작된다. 멸치 경매는 건멸치와 생멸치를 따로 분리해 실시한다. 건멸치는 반찬용으로 쓰이는 멸치고 생멸치는 대부분 김장에 사용되는 젓갈용이다. 

현재 8척의 근해유자망 어선이 여수수협에서 생멸치를 위판하고 있다. 하루 위판되는 생멸치양은 평균 1500개(한상자 28㎏~30㎏) 상자에서 많게는 2000개 정도라고 한다. 5월부터 경매가 시작되고 6월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이며 7월말까지 이어진다. 본래 매일 경매가 있었지만 토요일은 경매를 하지 않는다. 가격은 초반에 고가에 거래되다가 점차 어획량이 많아지면 가격이 안정세를 되찾아간다. 

207 윤경호가 경매를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비록 원하는 어획량을 올리지 못했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새벽이면 또다시 바다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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