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민통선’ 넘나드는 대진항 사람들
‘바다 민통선’ 넘나드는 대진항 사람들
  • 배석환
  • 승인 2021.05.04 19:15
  • 호수 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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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우리바다 - 대진항

◆ 1998년 대진항

민족의 비극이자 최대의 치부인 비무장지대(DMZ). 이 모순투성이의 장소는 육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록 눈에 보이는 철조망 따위는 없다지만 바다에도 엄연히 군사분계선이 있고 그 선은 우리네 바다마저 분단의 아픔에 멍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멍자국 한가운데에 접적어장(接敵漁場)이 있다. 이름에서부터 서슬이 시퍼런 접적어장은 말 그대로 적과 인접한 지역의 어장이라는 뜻이다. 좀더 엄밀히 따지면 어로한계선 인근에 위치한 지역을 말하는데 강원도 고성의 저도어장과 강화도, 연평도, 백령도 주변의 바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접적어장은 자연이 수십년 동안 그대로 보존되면서 풍광이 수려하다. 그리고 어족자원이 풍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강원도 고성의 저도어장은 멀리 해금강과 인접해 있고 날씨만 좋으면 금강산 봉우리들이 보인다. 

게다가 저도어장은 겨울철 명태를 비롯해 가자미, 문어, 멍게, 해삼, 대게, 미역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가쁠 정도로 많은 수산물이 생산되니 천혜의 어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 저도어장을 품고 있는 대진항과 이 대진항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는 대진어촌계원들은 이 천혜의 어장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만 저도어장을 개방하고 그 이외 시기는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어업인들 사이에 저도어장 또는 93호 어장 등으로 통하는 저도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연안에서 930미터 떨어진 조그만 무인도다. 이 지역을 93호 어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 지역에 위치한 공동어장 일련번호가 93번이기 때문이다. 

지도를 펼치면 저도는 분명 휴전선 아래쪽 우리땅 바로 옆에 딸려있지만 문제는 저도가 북위 38도 33분선 북쪽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바다의 민통선이라 할 수 있는 어로한계선에 포함된다. 

즉 저도어장은 아무리 고기가 많다고 해도 마음대로 잡아낼 수 없고 출입이 허가되는 시기에 해경의 통제하에 조업을 할 수 있다. 또한 대진항과 초도항에 등록된 어선들만 입어가 가능하다. 두 항구의 배를 합치면 200여척 정도이며 어촌계원은 400여명으로 개방된 시기에 올리는 수익이 척당 10억원 정도라 한다. 사람을 집어 삼킬듯한 크기의 문어와 어른 팔뚝만 한 해삼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과장된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황금어장으로 인해 어업인들이 몰리면서 의도치 않게 조업구역을 이탈하거나 월선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이렇듯 조업환경이 좋지 않음에도 대진어촌계원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궂은 날씨로 실제 조업일 수가 일년에 50여일 정도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내어주는 저도어장이 있거니와 통일의 길목에 있는 최북단 대진항이 다시금 번성 할 그날을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기사발췌 : 우리바다 제361호(1998년 5월호)


◆ 2021년 대진항을 가다
 

저도 황금어장 빨간불

2000년대 들어서 대진항을 가득 메웠던 명태는 이제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명태잡이 어선이 들어오면 그물에 걸려 있는 명태를 분리하는 일로 분주했던 선착장은 이제 창고와 해양공원으로 변모했다. 

2016년 완공된 해상공원은 대진항 부근의 깨끗한 바다를 좀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일종의 산책로다. 총 연장 152미터의 짧은 거리지만 그늘막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한 여름에도 충분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여명이 드리워지는 시간이 되면 시야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조업에 필요한 장비가 늘어서 있던 창고들이 없어지고 대진항 수산시장이 2011년 들어섰다. 지난해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현대식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경매현장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지난 4월 29일 찾은 대진항 위판장에는 1990년대 많이 나오던 대게, 해삼, 멍게, 대구, 곰치 등이 나오지 않았다. 진맹규 대진어촌계장에 따르면 대게는 어획되는 양이 미비하고 해삼, 멍게는 해녀들이 채취하는 양이 전부이며 어촌계에서 관리하고 있어 경매에 나오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또한 대구와 곰치를 어획하는 어선들은 도치와 아귀를 어획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진항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어종은 단연 문어다. 문어 경매는 무게 단위로 선입찰을 한다. 어선들 마다 마릿수가 많으면 상관이 없지만 100여척 정도가 문어잡이를 하는데 잡히는 마릿수가 적어 경매를 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수조에 보관을 해두었다가 어느 정도 양이 차면 판매를 하는 방식이다. 

문어는 4계절 나오는 어종이지만 저도어장이 개방되는 4월에 가장 많은 어획량을 보인다. 올해 4월 초에 하루 위판물량이 4000㎏에 달했다고 한다. 문제는 해마다 그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도루묵이 나오는 시기에 조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어업인들 요구를 수용하면서 저도어장의 개방 기간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로 연장했다. 이후 2~3년간 문어 어획량이 증가하다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대진어촌계 자체적으로 문어를 금어기를 정하기도 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 위판장에 종종 등장하는 어종에는 연어가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연어의 색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원도에서 해마다 연어 자원증대를 위해 1968년부터 어린 연어를 방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연어가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연간 어획량은 2016년 기준 10만 마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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