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우리바다’ – 굴 조업현장
다시보는 ‘우리바다’ – 굴 조업현장
  • 류진희
  • 승인 2021.02.17 19:05
  • 호수 5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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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영양별식 ‘굴’

우리바다는 지난 1963년 12월 대어민 지도를 목적으로 창간 한 ‘어민’이 그 시작이다. 이후 1975년 1월 ‘새어민’으로, 1996년 5월 ‘우리바다’로 제호를 변경했다. 지난해 웹진으로 전환해 제564호를 마지막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어업in수산은 1996년 발행된 제334호부터 순차적으로 기사를 발췌해 최근 우리바다 기사와 비교함으로써 어촌·어업인의 변화된 생활상을 매월 2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1996년
 

△ 참굴이 대표 굴

‘큰놈은 지름이 한 자 남짓되고 두 쪽은 합하면 조개와 같이 된다. 몸은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구름 조각 같으며 그 껍질은 종이를 여러 겹 바른 듯이 두껍다. 바깥쪽은 매우 거칠고 안쪽은 매끄러우며 그 빛깔은 눈처럼 희다.’ 이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굴에 대한 이모저모를 살펴놓은 내용이다.

굴의 감칠맛은 살에 녹아들어 있는 글리코겐과 아미노산의 한가지인 글리신·글루탐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굴은 우리 바다에 사는 참굴·강굴·바윗굴·털굴·벗굴 뿐만이 아니라 열대에서 한 대지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바다에 120여종 쯤이 고루 분포,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 때의 패총에서 굴 패각이 많이 출토됐고 ‘동국여지승람’에도 ‘강원도를 뺀 칠십고을의 토산물, 굴’이란 기록이 남아있어 굴에 대한 식용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굴 양식장은 1897년 원산만 부근 바다에서 원시적 양식법인 살포식 양식이 시작됐고 1907년 국내 최초의 성문법이라 할 수 있는 한국어업법이 만들어지면서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이후 투석식과 송지식 양식법, 1960년대에 들면서 굴수하식 양식방법이 보급됐고 이를 계기로 현장 어민들은 물론 어촌지도소, 학계 등에서 각 연안에 걸맞는 양식법이 속속 등장하면서 양식어장도 내만 바다에서 외해 깊은 바다로 점차 확장됐다.

수심이 깊고 수온이 낮은 동해안이나 수심이 너무 낮은 서해안보다는 그 조건이 여러모로 굴이 살기에 적당한 남해안에서 굴양식 어업이 발달했다. 그런만큼 경남의 통영과 고성에서 양식 굴의 삼분의 이쯤을 그리고 여수·여천·장흥 등 전남에서 나머지 삼분의 일쯤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식 패류 중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참굴은 성장이 워낙 빠른데다가 번식도 왕성해 지난 1960년대 수하식 양식법이 널리 퍼지면서 대표적 양식굴로 자리매김 했다. 이제는 그 양이 많이 줄어든 자연산 참굴은 주로 해안의 암초 등에 달라붙어 있어 썰물때면 햇볕에 노출되거나 그 껍질이 파도에 닳아서 얇기도 하려니와 성장도 더디다.

저잣거리에서 고흥석화와 경기 화성지역의 자연산 참굴을 으뜸으로 쳐주는데 희안하게도 산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도 참굴의 한 특징이다. 예를들면 화진포 등 동해안산 참굴은 20㎝ 이상 되는 대형종이 있는가 하면 서해안산 참굴 중에는 5~6㎝ 밖에 안되는 것도 있단다.


※ 글/사진 새어민 제34권 제334호(1996년 2월호) 발췌

2018년

△ 바다가 만들어낸 풍미

말캉한 식감의 짭조름한 바다의 풍미. ‘바다의 우유’라 불리며 제철인 겨울엔 날것 그대로 혹은 찜으로 즐기고 다른 계절엔 무침이나 전으로 즐긴다.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한 바다 먹거리다.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양한 국민 천연 자양강장제 굴을 만나러 전라남도 고흥군 앞바다로 향했다.

나로우주센터로 향하는 첫 번째 다리인 나로1대교를 지나 30여분 정도를 달리니 엔진소리가 잦아든다. 아직 별이 보일 정도로 어둠이 드리워져 있어 렌턴으로 여기저기를 비추더니 다시 방향을 잡아 정박을 한다. 하얀색과 주황색의 부표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길게 늘어서 있다. 남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장 모습이다. 이러한 부표 밑에는 다시마, 김, 그리고 홍합정도가 일반적인데 이곳은 대부분이 굴양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명이 드리워지고 앞을 분간할 수 있자 작업이 시작되었다. 갈고리를 바다에 던져 부표가 매달려 있는 연승줄을 끌어와 바지선(무동력선)에 설치된 권양기(로프를 감는 도르래 장치)에 연결해 천천히 들어 올린다. 바닷속에 잠겨 있던 굴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바다를 깨우더니 바지선 중앙에 고정되어 있던 커다란 기계장치가 기지개를 켠다.

연승줄이 감기는 속도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누군가가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기계를 멈춰야 하고 그 시간만큼 작업은 더디게 진행된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연승줄과 가장 가까운 선원이 같이 딸려 오는 부표를 제거한다. 그러면 바로 뒤에 선원이 굴 뭉치가 달린 채묘줄을 낫으로 재빨리 잘라낸다. 그러면 에스컬레이터를 연상시키는 밸트를 따라 세척기로 향한다. 여기서 또 한명이 필요하다. 채묘줄이 엉키면서 굴 뭉치가 한꺼번에 밸트를 따라 올라가게 되면 중간에 걸리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커다란 전정가위로 엉킨 채묘줄을 잘라준다. 

원통의 세척기를 통과한 굴은 수산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찜용 크기의 굴 형태로 커다란 망태안으로 수북이 쌓인다. 망태가득 굴이 차면 크레인으로 바지선 선미부터 차곡차곡 정렬하면 끝이다. 
“망태하나에 보통 1톤 이상의 굴이 들어갑니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35개 정도의 망태를 채워야 물량을 맞출 수 있습니다.” 김호일 여흥수산 대표의 설명이다.

새벽부터 시작한 조업은 해가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편이다. 하지만 중간에 또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나가기도 한다고 하니 겨울철 대표 먹거리인 굴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난다.


※ 글/사진 우리바다 제541호(2018년 1~2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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