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잔칫집에 꼭 오르는 ‘몸국’
제주 잔칫집에 꼭 오르는 ‘몸국’
  • 배석환
  • 승인 2020.12.16 20:25
  • 호수 5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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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바다 웹진(wooribadawebzine.co.kr)

갈칫국, 고기국수, 돔베고기 등 제주도는 하나의 섬으로 이뤄진 만큼 독특한 음식으로 가득한 곳이다. 섬 전체가 여행지인 만큼 이곳저곳에서 찾아오는 육지 사람들 입맛에 맞춘 음식이 향토음식의 자리를 대신할 법 한데도 제주도는 그 고유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런 제주 향토음식 중에서도 어디에 가든 눈에 띄는 음식이 ‘몸국’이다. 하얀 국물에 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흔히 먹는 국밥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몸국은 국밥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제주는 예부터 돼지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제주도가 아닌 곳에서도 ‘제주 돼지고기’라는 이름을 내건 식당도 많다. 제주를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 제주 돼지고기를 안 먹었다면 제주도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을 만큼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돼지고기다.

이런 돼지를 가지고 만든 음식 중에서도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국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조류인 모자반을 제주도에서는 ‘몸’, ‘몰망’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몸국’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오랜 시간 푹 삶은 육수에 대여섯 시간 물에 불린 모자반을 숭덩숭덩 썰어서 집어넣는다.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솥의 뚜껑을 열고 찬물에 푼 메밀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여기에 부추와 다진 마늘, 삶은 돼지고기, 생강 등을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마무리한다.

고기를 삶은 육수와 함께 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인 만큼 그 옛날 몸국은 결혼식 같은 잔칫날에나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제주의 식당에서 흔하고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옛날부터 큰 가마솥에 불을 때고 한가득 끓인 몸국은 제주의 잔칫집에 빠지면 섭한 음식이다.

돼지고기에 해조류, 메밀까지 들어간 몸국은 그 맛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막상 먹어보면 ‘이런 맛이었어?’ 하고 놀라게 된다. 제주도에서는 흔히 이 맛을 ‘베지근하다’ 라고 표현하는데, 고기 등을 끓인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난다는 뜻이다.

◆진하고 깊은 맛을 자랑하는 몸국

제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됐다는 재래시장인 동문시장. 야채, 생선, 과일 뿐 아니라 옷가지, 이불, 화장품 등 없는 것이 없는 말 그대로 만물시장이다. 저녁시간이 조금 지난 7시. 구석구석 뻗어있는 시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몸국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잠옷에 겉옷을 걸쳐 입은 편한 차림의 한 부부가 몸국과 생선구이에 술을 한 잔 기울이고 있었다.

조촐한 메뉴판을 보며 몸국과 고등어구이를 주문한다.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좁은 식당에는 주인 두 분이 새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꽤나 연륜이 느껴지는 주인분께 여쭤보니 1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셨다고 한다. 허름해 보이는 시장통 식당이었지만 정갈하고 말끔한 상차림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콩자반과 절인 배추, 배추김치, 얇게 썬 깍두기와 막장, 멸치젓이 상 위로 올라온다. 몸국을 먹어본 적이 있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질문에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고 하니 몸국에 대한 설명을 줄줄 읊으신다. 식당에는 하루 종일 가마솥에서 펄펄 끓고 있는 몸국의 열기 때문에 훈훈한 공기가 몸을 데운다.

이윽고 차진 흑미밥과 함께 진하게 우러난 몸국이 나온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몸국을 한 번 맛본다. 걸쭉한 국물을 맛보니 ‘베지근하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몇 시간을 우려낸 돼지고기 육수와 모자반이 내는 독특한 향미는 제주도의 맛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진한 국물에 시원한 배추김치를 올려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한다.

몸국으로 몸에 얹힌 초겨울의 한기를 걷어낸다. 추위에 무뎌졌던 감각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고기를 푹 끓여 낸 육수인 만큼 맛이 진한 것은 물론, 해초가 들어가 있어 담백하기까지 하다. 

구수하니 한술씩 천천히 입에 들여 넣기에 참 좋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적에 방문객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기운을 돋워주던 제주의 풍미는 이토록 세심하고 깊은 맛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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