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여행, ‘나’라는 존재 재발견하는 과정
바다 여행, ‘나’라는 존재 재발견하는 과정
  • 배석환
  • 승인 2020.09.23 19:59
  • 호수 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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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듯 여행도 비슷하다. 괴로운 순간을 겪을지라도 끝내 사랑하고 살아내고야 마는 우리의 삶처럼, 고되고 실패한 여행일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된다. 우리는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슬픔으로부터 공감한다. 여행도 그렇다. 이 세상에 헛된 여행은 없다.

고되고 힘들지라도 어딘가로 끊임없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홀로 떠나는 이가 있다. 일상의 소란스러움을 등지고 바다로 가 자연이 건네는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다독이는 안흥준 감독의 이야기다. 

가끔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온갖 책임을 필요로 하는 용무나 사회적으로 부여된 정체성, 그 밖의 부수적인 수식어들을 제쳐두고 오로지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싶은. 잠시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살며 느리고 고요하게 시간을 허비하듯 보내고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이 한적한 바다라면 더더욱. 

 

매번 짐을 꾸리고 번거롭게 일정을 쪼개 시간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더라도 그가 빼놓지 않고 여행에 나서는 이유다. 바다로 떠날 때의 짧은 기쁨과 바깥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설렘,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종종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마음을 다독거리기 위함이다.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닌 만큼, 그에게 여행은 어느덧 생활 일부로 자리 잡았다. 자연스레 자신만의 여행 철칙과 방식도 생겨났다.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여기는 부분은 관광객이 많지 않은 인적이 드문 장소,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다. 

안흥준 감독은 자연에 머물며 홀로 가만히 시간을 보낸다. 혼자여서 더 좋은 여행도 있는 법이다. 종종 눈에 담는 풍경이 아까워 사진을 찍기도, 몸과 마음에 얹힌 피로를 덜기 위해 음악을 듣기도 한다. 종종 사색에 젖어 적는 문장들은 소중한 글귀로 남아 영상의 제목이 된다. 물론, 그가 캠핑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경치를 감상하는 일이다.

때문에 ‘PICNICAMP 감성채널’은 다른 일반적인 여행 채널과는 달리 정적이다. 부산스럽게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가이드 역할을 하지 않고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여행의 과정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해가 뜨고 지는 풍경과 한 끼 분의 식사,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크고 작은 자연의 소음. 가끔 자연을 베고 늦은 잠을 청하는 모습들을 말이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을 꼽자면 동해로 캠핑 갔을 때라고 한다. 아침부터 순식간에 먹구름이 뒤덮였는데 엄청나게 바람이 불면서 텐트가 처음으로 무너진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급하게 철수를 하고 근처 식당에 들러 밥을 먹었는데 그날 그 캠핑장에서 운명처럼 지금 기르던 강아지를 입양하게 됐다. 그 순간이 참 기억이 남아 영상의 제목도 ‘동쪽 바다의 선물’이라 지었다.

향후 가고 싶은 여행지를 물으니 남해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올해 봄, 남해에 들렀을 때 너무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마치 그 기억으로 한 해를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삼면이 바다를 맞대고 있으니 각기 다른 바다의 끝을 보고 오면 좋을 거라고도 친절히 일러준다. 

다 같은 바다여도 그 물빛이 다르다고 한다.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정성이 있어야 바다는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제라도 바다를 맞이하면 물빛을 오래 눈여겨보자. 그렇게 바다에 젖어 그간 소홀했던 마음을 다독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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