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숨을 돌리다, 영덕 블루로드
바다에서 숨을 돌리다, 영덕 블루로드
  • 배석환
  • 승인 2020.03.25 19:05
  • 호수 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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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바다 웹진(wooribadawebzine.co.kr) 

 


바다는 어민의 생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보듬기도 한다. 영덕블루로드 역시도 쪽빛 바다를 비추며 지나가는 이에게 삶의 여유를 살포시 얹어준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물이 차듯 한껏 부풀고, 너그러워진다. 마치, 온전한 하루를 선물 받은 기분이 든다.

산과 바다를 잇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삶을 엮으며 길게 이어진다. 해안에서부터 파도 소리는 바람처럼 연신 불어오고 그렇게 바다 내음에 물씬 취해 걷다 보면 어느샌가 응어리져 있던 근심들이 흩어진다. 고민이 바닷물에 쓸리듯 조금씩 옅어지고 별일 아닌 일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영덕블루로드를 걷는 일은 마치 하나의 치유과정 같다. 자신을 보듬고 나아간다.

영덕블루로드는 총 네 가지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길은 사람 성격처럼 저마다 색다른 풍광을 자랑한다. 시작점이기도 한 쪽빛 파도의 길은 눈에 파란 물이 들 것처럼 진한 물빛을 뽐내고 빛과 바람의 길에 다다라선 영덕의 냄새가 밴 바람을 만날 수 있으며 푸른 대게의 길에는 영덕의 맛이 깃든 어민들의 터전을, 끝으로 목은 사색의 길에 도착해서는 야트막한 해송들 사이를 거닐며 잠시 고요와 사색을 감상할 수 있다.

 

삶의 균형을 생각하게 만드는 발자취

푸른 대게의 길에 들어서자 그 이름에 걸맞게 온통 새파란 물결이 일렁인다. 긴 수평선을 사이로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고 파도는 그 경계를 지워 내려 쉼 없이 넘실댄다. 바람이 제법 거칠어 바닷물이 바위에 부서질 듯 갈라진다. 적당히 힘을 풀고 발이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금방 대탄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해송이 해수욕장 주위를 둘러싸 그늘이 져 있다.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박수치듯 일제히 움직인다. 모래의 촉감이 부드럽다. 물거품이 자글거리는 바닷가에 발을 담그자, 시원하면서도 기분 좋게 간지럽다. 몸의 감각이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오래 걷는데도 무리가 없다. 적당한 입자를 지닌 모래 덕인가 싶다가도, 선선한 바람이 불면 또 그 때문인가 한다. 무엇이 됐든 이곳에선 걷는 일이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럽다.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구들이 소박하게 모여 있다.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작은 배들이 몇 척 정박해 이곳이 포구임을 증명한다. 마을에는 횟집도 있고 매운탕 집이나 민박집도 몇 곳 있다. 몇몇 낚시꾼들이 방파제에 걸터앉아 낚싯대를 걸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꽤 손맛이 좋은 터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표정이 밝은 게 벌써 수확을 올린 모양이다.

길은 해안 쪽으로 더욱 가까워진다. 모든 코스 중, 바닷길이 제일 많은 구간이다. 때문에 해안 트레킹 코스 명소로 꼽히기도 한다. 드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갈대숲과 바위산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다들 이전에 알던 사이인 양 마주칠 때마다 괜한 안부를 묻거나 조심히 가시라는 말을 꼭 쥐여준다. 길이 험하지는 않으나 주위에 정신을 쏟다 보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위산에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등산객 차림을 한 사람들과 나란히 줄지어 뒤를 따랐다. 한두 번 다녀본 솜씨가 아닌 듯, 발걸음이 노련했고 낭비가 없었다. 가끔 앞서 걷다가도 위험한 구간이 있을 때마다 작게 조심하란 말을 일러주었다. 그러면서도 해안 쪽으로 눈가를 돌릴 때면 빼먹지 않고 저것 좀 보라며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킨다. 새 떼가 물 위에 앉아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렇게 삶의 균형을 잡듯 가야 할 길과 쉬어야 할 길을 나누어 천천히 나아갔다. 

오랫동안 걷다 보니 문득 지나온 자리가 궁금해 뒤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간 지나온 풍경이 까마득히 펼쳐져 있다. 무언갈 놓치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사뭇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애써 돌아갈 필요는 없다. 어떤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닌 작은 결점들이 모여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우리의 삶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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