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건널목에서 생명을 보듬는 ‘천수만’
계절의 건널목에서 생명을 보듬는 ‘천수만’
  • 배석환
  • 승인 2020.02.26 20:52
  • 호수 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굴밥 한술 어리굴젓 한 젓가락 입안 가득 바다 풍미

짠 내가 물씬 맡아진다. 바다가 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저 소금기 덕이기도 하다. 그렇게 천수만은 얼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다가 기다렸다는 듯 철새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다. 계절과 계절의 건널목에서 생명의 터전을 마련한다. 천수만은 고이고 흐르면서 철새들의 피로를 보듬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삶을 정성스럽게 빚는다. 이 모두가 바다에서부터 비롯된 일이다.

천수만은 수심이 얕은 곳이었다. 천수(淺水)라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다 그 때문이었다. 국토 확장과 더불어 농경지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이 대대적으로 시행되면서 천수만은 자연스레 대상지로 선정됐다. 지형 조건이 적합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천수만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수심이 깊지는 않았으나 대신 조수간만의 차가 극심했다.

그 대안 책으로 폐유조선을 동원해 물살과 파도를 막아 겨우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뉴스가 된 이른바 ‘정주영 공법’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천수만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거대한 담수호와 농경지를 이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먹을 식량을 일구고 철새들은 겨울을 나며 삶을 이어갔다. 천수만은 이 모든 일을 묵묵히 감내하며 개의치 않다는 듯 그저 담담하게 흐를 뿐이다.

 

철새들의 귀한 보금자리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된 담수호와 농경지는 철새들에게 귀한 집터다. 시차를 건너 이제 막 도착한 철새들은 천수만에서 피로를 풀고, 겨울을 날 힘을 얻는다. 담수호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농경지에 남은 낙곡이 철새무리에게 훌륭한 식량을 제공한 덕이다. 그렇게 천수만은 가창오리, 큰기러기, 말똥가리 등 40여만 마리의 철새들이 모여드는 세계적인 철새의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간월호 A·B지구 방조제 부근은 수생식물이 군락을 이뤄 철새들이 해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11월부터 약 2월 부근까지, 천수만 곳곳에 설치된 탐조대를 통하여 편히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해가 지는 시간 즈음이면 가창오리가 떼가 무리를 지어 하늘에 거대한 수를 놓는 장면은 천수만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그 움직임이 무질서한 듯 복잡하되 한편으론 정연하고 가지런하다. 마치 거대한 생의 흐름을 보는 것만 같다. 사회적인 환경에서 자연적인 환경이 되었을 뿐, 자신의 생에 순종하고 요구되는 삶의 수순에 적응을 필요로 하는 건 어느 생물이나 매한가지였다.

 

천수만이 간직한 풍미
예로부터 천수만은 자잘하지만 단단한 ‘명품 굴’로 유명한 곳이었다.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반복적으로 햇볕을 쬐고 바닷바람에 말려지면서 그 풍미가 깊어진 것이다. 해마다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머니 열댓 분 정도가 물이 빠진 틈을 타 굴을 캐느라 여념이 없었다. 

갯벌 표면에 굴이 돌처럼 단단하게 박혀 있다. 언뜻 보아선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아주머니들은 정확하고도 세심한 손놀림으로 굴을 꿰어 바구니에 털어 넣는다. 마치, 다른 눈을 지닌 사람처럼 내게는 보이지 않던 굴들이 손이 닿는 곳곳마다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광경이 신기해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반복적으로 되푸는 손동작에 고단함과 피로가 엉켜 묻어 있다. 삶을 살아내는 사람의 경이로움도 언뜻 일렁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