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이 꽉 찬 겨울 별미 ‘도루묵’
알이 꽉 찬 겨울 별미 ‘도루묵’
  • 배석환
  • 승인 2019.12.18 18:25
  • 호수 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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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앞바다에 몰려온 겨울손님 위해
그물에서 도루묵 분리하는 수작업 분주

 

속초 앞바다에서 겨울에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어종은 양미리와 도무룩이다. 양미리는 동명항 부근의 비교적 가까운 연안에 어장이 형성돼 있는 반면 도루묵은 고성군과 양양군과 인접한 바다에 어장이 형성돼 30여분 정도 바다를 달려야 한다. 

“한 번 투망하면 그물 길이가 1km 정도 됩니다. 부표를 보고 그물이 쳐져 있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러다 보면 도루묵이 나오는 최적의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빨리 달려와 먼저 좋은 곳에 그물을 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광석 선장의 설명이다.

부표를 바다에 던지고 재빨리 선미에 있는 그물을 바다에 뿌린다. 처음에만 손으로 길을 잡아주고 이후에는 앞으로 전진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다에 펼쳐지도록 방향을 잡는 것이 기술이다. 

그리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았다. 설치한 부표를 다시 건져 올리고 10여 분 정도 지난 후 선수에 설치된 자망 양승기에 모릿줄을 걸어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바다가 허락한 결과물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낚시처럼 미끼를 바꾸거나 찌를 바꾸는 작업을 할 수 없기에 묵묵히 그물을 걷어 올린다.

 

초반 조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텅텅 빈 그물은 아니었지만 주렁주렁 달려있어야 할 도루묵이 듬성듬성 걸려 있다. 다른 어종들도 그물과 함께 올라온다. 오징어와 대구 등 다양하다. 비싸기로 소문난 닭새우도 보인다. 

갑자기 전광석 선장이 ‘도루묵 올라온다’며 큰 소리로 외친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처럼 그물을 따라 도루묵이 촘촘하게 매달려 있다. 알이 꽉 들어찬 물 좋은 도무룩이다. 그물 올라오는 속도에 맞추다 보니 그물에서 도루묵을 떼어내는 작업은 하지 못한 채 갑판 위에 그대로 쌓이기 시작한다. 그 길이만 1km 정도이니 어느새 배안이 도루묵으로 풍어를 이룬다.

“첫 그물에서 그날의 어획량이 결정됩니다. 많은 어선들이 조업에 나서기 때문에 놀란 도루묵 무리가 깊은 바다로 숨어 버리면 다시 그물을 쳐도 잡기 힘듭니다. 동트기 전 먹이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새벽에 나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많은 양이 어획되면서 경매순서가 뒤로 밀리면 좋은 값을 받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도루묵이 그리 반갑지 않은 전광석 선장의 설명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도루묵 조업의 가장 힘든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물에서 도루묵을 분리하는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추위와 싸우면서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도무묵을 떼어낸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조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선착장에는 도루묵을 선별하는 작업만 하는 어업인들이 각자 계약된 어선 앞에 대기하고 있다. 

갑판에 수북하던 그 물을 다시 선착장으로 끌어 올리며 도루묵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바다로 쏟아져 들어갈 때는 순식간이었는데 아침 해가 떠오른 후에도 작업은 계속됐다.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아 몰랐는데 해가 떠오르니 전광석 선장의 입주위가 새벽 조업 때와는 달리 지저분해져 있었다. 손으로 잘 떼어지지 않은 도루묵을 입으로 물어 떼어내면서 생긴 흔적이다. 

꼬리 부분을 이빨로 물어 그물에서 분리해야 하는 강도 높은 노동의 대가는 그리 달콤하지 않다. 싼 가격에 팔려나가기 때문에 육체적 강도를 생각하면 너무도 비효율적인 조업인 것이다. 그럼에도 어업인들은 또다시 바다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사명감이던 숙명이던 차가운 겨울바다에서 무엇인가를 건져 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그 소박한 마음을 다잡으며 이 시기를 놓치면 깊은 바다로 돌아가 버릴 도루묵을 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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