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문화마당 책소개
수협문화마당 책소개
  • 조현미
  • 승인 2019.12.11 17:38
  • 호수 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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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진리가 있다. 인류가 축적한 방대한 지식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손에 잡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또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간들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에 본지는 어업인과 수협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문화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엄선된 다양한 책 등을 소개한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저자: 페터 한트케(역자 안장혁) 
◼ 출판사: 문학동네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성장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라는 점, 주인공의 아내의 직업이 한트케의 첫 아내와 같이 배우라는 점 등으로 미루어 한트케의 삶이 깊이 반영된 자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부 ‘짧은 편지’와 2부 ‘긴 이별’로 구성된 이 소설은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 싶지는 않으니까”라는 ‘짧은 편지’ 한 통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은 편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내가 닷새 전까지 머물던 뉴욕으로 찾아간다. 작가인 일인칭 화자는 미국 여행을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묘사하는데 여기서 ‘이별 여행’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외적으로는 서로 불화가 끊이지 않던 한 부부가 여행을 통해 성숙한 이별을 고한다는 의미이고, 내적으로는 외부 세계와 커다란 이질감을 느끼며 사는 극도로 멜랑콜리하고 비관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과거의 ‘나’와 이별하여 새로운 자아를 찾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폐쇄적인 성격의 주인공은 미국에 도착해 처음에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가 느끼는 절망감은 다른 나라, 즉 미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러나 여행하는 동안 마주치게 되는 사물들은 ‘세상 속의 나’를 인식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사물들로 탈바꿈하며, 타인과의 대화는 과거의 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 

주인공은 이별 여행을 통해 ‘나’라는 고립된 자아를 버리고 ‘우리’라는 보편적 가치를 획득해간다. 이 책을 출간할 당시 한트케 스스로도 “한 인간의 발전 가능성과 그 희망을 서술하려 했다”고 밝혔듯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기록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다.

>> 책속으로
나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머릿속의 혈관은 박동을 멈췄고 심장도 멎었다. 나는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피부는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몰려드는 쾌감과 함께 나무의 움직임이 호흡 중추 기관의 기능을 넘겨받는 것을 감지했다. 실측백나무가 나를 자신의 품 안에서 흔들리게 했다. 내가 저항하기를 그만두고 마침내 잉여의 존재가 되어 실측백나무의 부드러운 놀이에서 벗어나자 실측백나무가 내게서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내 안의 살인마 같은 태연함도 해소되었다. -98쪽

유디트가 바로 그러한 의도로 나를 뒤쫓아오고 있음을 나는 안다. 우리는 예전에도 여러 번 서로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상대가 이미 죽어 있는 상태를 보길 원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직접 없애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희생자를 학대하고 비방함으로써 마침내 희생자가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느끼게끔 만드는 치정 살인의 경우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상대방이 자기가 먼저 살해되기를 원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겠는가! -136쪽

<자료출처-인터넷 교보문고·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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