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함을 물고 온 은빛 보물 ‘전어’
고소함을 물고 온 은빛 보물 ‘전어’
  • 배석환
  • 승인 2019.08.28 19:17
  • 호수 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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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의 고소함. 사시사철 나는 어종이지만 여름부터 가을까지
잡히는 것들이 가장 맛있다. 여름 전어는 가을 전어에 비해 기름기와 고소함이 덜 하지만
뼈가 물렁해 회로 즐길 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고,
가을에 나는 것은 몸집이 커짐에 따라 기름이 꽉 차고 뼈가 단단해져 구이가 제격이다.

 

전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어획된다. 산란기가 되면 내만으로 몰려와 민물과 만나는 만 근처의 저층에 산란한다. 그래서 강물이 유입되는 만이 발달한 남해 바다에 전어가 많이 난다. 특히 섬진강 물줄기와 맞닿아 있는 전라남도 광양만과 경상남도 강진만이 전어의 고장이라 알려져 있다.

강진만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남해군 사이의 바다를 말한다. 예부터 전어뿐 아니라 숭어가 살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곳곳에 숭어 양식장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어획시기가 한 달 정도 빠르다. 보통은 ‘가을 전어’라 해 날이 쌀쌀해지는 시기에 전어를 잡는데 강진만에서는 한 여름에 전어를 잡기 시작한다. 물론 가을에도 전어를 잡기는 하지만 여름 조업을 더 신경 쓴다는 것이다.
 
굽이굽이 해안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양포 선착장. 작은 어촌마을이라 그런지 큰 배는 찾아 볼 수 없다. 작은 자망 어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운데 어선 한 척이 불을 밝힌다. 전어잡이를 준비하고 있는 길성호다. 작은 어선이다 보니 선원은 곽산구어촌계장 부부 이외는 없다.
 
새벽 4시라 그런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반평생을 이곳 강진만과 함께 한 이들만이 한 줄기 불빛에 의지해 바다를 헤쳐나간다. 전어의 특성상 먼 바다가 아닌 내륙 가까이에 서식하기 때문에 양포 선착장 바로 앞에서 조업을 할 줄 알았는데 50여분을 내달린다. 거리상으로 하동군 보다는 남해군에 가까운 곳에 멈추고 이리저리 주변을 살핀다. 그물을 놓아둔 것도 아닌데 한참 동안 라이트를 비추기만 한다. 

“근처에 다른 그물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물 길이가 350m 정도 되기 때문에 다른 어선이 설치해 놓은 그물과 얽히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먼저 그물을 놓은 사람이 그물을 다 올리기 전까지 근처에서 조업을 하면 안되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곽산구어촌계장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근처에서 조업하고 있는 배가 한 척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많이 나오냐고 말을 건넨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깊은 한숨이다. 먼저 조업을 하고 있던 배가 다른 자리로 이동하자 그때야 그물을 놓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조류의 방향이라고 한다. 전어가 조류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그 길목에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기다랗게 펼쳐진 그물은 바닷속에 짧은 시간 머물러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부표를 건진다. 천천히 그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그물을 걷기 시작한다. 사방이 어둡고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검은데도 그 물을 따라 올라오는 은빛이 선명하다. 청청 강진만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전어다.

 

“전어는 밝아지기 시작하면 숨어 버립니다. 그래서 새벽에 조업을 시작해 오전에 끝납니다. 가장 많이 어획되는 시간이 새벽 5시 정도입니다. 이때 그물을 설치하지 못하면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5시 정도에 물이 들기 시작하는데 잠깐 동안 조류의 흐름이 멈춥니다. 그러면 그물이 바닷속에서 접히지 않고 평평하게 펼쳐집니다.” 곽산구어촌계장의 말이다.

그리 많은 양의 전어가 올라오는 것은 아니지만 듬성듬성 그물코에 박혀 있는 전어를 떼어내어 수조에 모아두니 제법 양이 된다. 평균적으로 25kg 정도 잡힌다고 한다. 물론 매년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50kg 정도가 기본으로 잡혔다고 한다. 
아침이 밝아오고 조류의 흠이 거세지기 시작한다. 마지막 그물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는 않지만 전어를 떼어내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어느새 한 쪽 수조에는 전어가 가득 들어찼다. 만족할 양은 아니지만 조업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양포 선착장에 도착하기 전 다른 선착장에 들렀다. 다른 전어 잡이 어선들도 하나둘씩 합류한다. 새벽 조업의 결과물인 은빛 전어의 무게를 달고 가격을 책정하기 위함이다. 이 시간에 다른 어선들의 조업 결과도 알 수 있다. 하얀색의 바구니 하나를 채우는 것이 평균이지만 간혹 배 이상 전어를 잡은 어선이 있다. 다들 부러움의 농을 건넨다.

조금 늦은 곽산구어촌계장댁 아침 식탁에 새벽에 잡은 전어가 올라왔다. 구이가 아닌 싱싱함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회다. 초장에 찍어 한입 가득 맛을 보니 역시나 부드럽다. 가을 전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뼈조차 잘 씹힌다. 강진만에 찾아온 은빛 손님이 무더위로 지친 입맛을 돌아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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