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욕지도’
  • 이명수
  • 승인 2019.08.07 19:32
  • 호수 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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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철
무인도테마연구소장

 

나는 지금 전진기지로 간다. 함께 섬을 다니는 멤버들, 젊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섬크루’들이 있다. 다녀온 섬마다 별명을 붙여주곤 하는데 욕지도는 ‘전진기지’란 이름을 붙였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가 푸르고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욕지도는 이미 입소문이 나있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차세대 섬관광의 전진기지랄까.
 
지도만 보아도 그렇다. 무인도인 작은 갈도를 제외하고는 욕지도가 가장 바깥에서 다른 섬들을 감싸듯 가장 먼 바다에서 파도와 거센 바람을 막고 있다. 상노대도, 하노대도, 쑥섬, 우도, 연화도 등의 섬들이 손가락이 펼치듯 서있다. 육지와 먼 곳에서 다른 섬들을 품으며 바람막이를 자처한 섬이다. 진지 구축과 요새를 만든다면 욕지도는 단연 최일선에서 온몸으로 적들을 막고 있는 판이다.
 
과거 욕지도를 보아도 임진왜란 직후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의 침략을 막는 전초기지였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여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욕지도는 한 때 많게는 8천 여명 이상이 거주하였는데 이 역시 일대의 어업 활동 전진기지였음을 말해준다. 당시 8천 명이 한 섬에서 살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와 먹거리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넉넉해 마음이 편안해지는 섬이었다. 경험에 의하면 늘 맞진 않지만 대개 섬은 물이나 먹을 것이 풍부할수록 마을 사람들의 인심도 후했던 것 같다. 내려서 길을 물었던 주민분의 친절이나 물어물어 온 마을길을 헤집고 다니던 나를 중간 중간 가이드를 자처했던 분들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 섬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며 학생이었던 내게 김치를 퍼주시던 민박집 아주머님도 그랬다.
 
일제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식민지 시기 많은 일본인이 살았던 것도 이를 반증한다. 욕지도는 지금도 풍부한 먹거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멸치와 고구마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전통 방식으로 솔가지의 불로 멸치를 유인하여 잡는 챗배 멸치잡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욕지도에서 흥미 있게 본 것이 곳곳에 있는 모노레일이었는데 섬 전체에 있는 고구마 경작지에서 고구마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노레일이었다. 

이제는 자동화 시설과 토양, 거친 바닷 바람으로 전국에서 가장 좋은 고구마 산지로 이름나 있기도 하다. 욕지도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고등어 양식에 성공하여 지금도 활발히 양식업이 진행중인 곳이기도 하다. 전갱이도 많이 잡힌다니 이쯤되면 예전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든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먼 바다에서 지리적인 전진기지였지만 결국 먹을 것이 많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그래서 일제 해양 수탈의 최일선 도서였으며 지금은 새로운 작물과 어업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관광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욕지도 한 바퀴를 도는데 17km 정도 되지만 일주도로가 완성되고 잘 정비된 덕에 예전보다 둘러보는데 부담이 덜해졌다. 가운데 천황봉을 두고 마을들을 지나는데 한 눈에 바다가 들어오는 곳들이 있다. 특히 남쪽을 향하여 바다를 보면 다른 섬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중간 중간에 시야에 걸리는 섬이 없으니 욕지도는 참 여러모로 ‘전진기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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