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생각나는 쑥버무리
봄이면 생각나는 쑥버무리
  • 수협중앙회
  • 승인 2019.03.06 20:36
  • 호수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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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희
서울시 도봉구

 

요즘 밥상에는 봄나물이 제격이다. 겨우내 질리도록 먹은 김장김치에 지쳐갈 즈음 산뜻한 나물을 상에 올리면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돈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물이 냉이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냉이로 오늘 아침에는 냉잇국을 끓였더니 향긋한 내음이 입맛을 돌게 했다. 어제 저녁에는 냉이를 씻어 생으로 쌈을 싸 먹었다. 오늘은 냉이 부침개를 만들어볼 참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봄은 ‘나물’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나도 산촌에서 자란 탓에 봄에는 지겹도록 나물을 캐러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냉이나 쑥은 물론이고 달래도 캐고 고사리도 뜯었는데 제일 캐기가 힘든 게 달래였다. 달래는 뿌리가 깊이 묻힌 데다 줄기가 가늘어 캐기가 쉽지 않았다. 동그란 뿌리 부분이 다 나올 때까지 깊이 파야 하는데 번번이 쑥 뽑아버려 두 동강이 나기 일쑤였다. 달래는 주로 보리밭에 많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 고향에는 보리밭 천지였다. 당연히 보리밭은 아이들 놀이터였다. 파릇파릇한 보리이파리 냄새가 나는 좋았다. 그런 보리밭에 철퍼덕 퍼질러 앉아 아이들은 봄나물을 캤다. 달래를 캐다 슬슬 지겨워지면 보리밭을 뒹굴며 숨바꼭질을 하던 재미도 쏠쏠했다. 봄바람이 살랑 살랑 얼굴을 간질이고 햇살이 자글자글 모여든 양지에 앉아 있다 보면 졸음이 쏟아졌다. 그럴 때면 논에 있던 볏짚 무더기 사이로 파고들어 꿀잠에 빠지기도 했다.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 보니 나물을 캐는 장소도 각자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주로 자신의 논이나 밭에서 많이 캤지만 더러는 새로운 곳을 찾기도 했다. 쑥을 캐면서 놀기에도 좋은 곳이 인기가 많았다. 냉이나, 달래, 씀바귀 등은 반찬으로 해서 먹었지만 쑥은 국으로 끓여먹기도 하고 쑥버무리며 떡을 해먹었다.

쑥으로 만든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쑥버무리였다. 잘 다듬은 쑥을 씻어서 물기를 뺀 다음 소금 간을 한 밀가루에 버무려 찜통에 쪘다. 먹을 것이 궁한 시절이어서 이른 봄에 먹는 쑥버무리는 우리에게 좋은 간식이며 영양식품이 되어주었다. 

지금도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빠지지 않는 게 쑥 캐던 시절 에피소드다. 고향에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없다 보니 노인들이 고사리를 뜯으러 산으로 가고 쑥을 캐러 들로 나간다. 문득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논둑에 앉아 있는 친정엄마 모습이 그려진다. 올봄은 고향의 바람과 햇살이 유난히 그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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