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아저씨의 미소
경비아저씨의 미소
  • 수협중앙회
  • 승인 2019.01.16 20:36
  • 호수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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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숙
서울시 송파구 송파대로

일주일 전부터 엘리베이터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못 쓰는 가구나 재활용품을 몰래 버리지 마세요. CCTV 확인 후 수거비용의 두배를 물리겠습니다. 경비원이 너무 힘듭니다.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안내문에서 내 시선을 붙든 건 ‘경비원이 너무 힘들다’는 부분이었다. 십 년 넘게 살아온 아파트지만 이런 경고문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오죽했으면 경비원이 경고문까지 붙였을까 싶었다. 며칠 전에 본 경비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은 퇴근길에 경비실에 택배를 찾으러 갔다. 문을 열자마자 라면 냄새가 훅 끼쳤다. 아저씨는 식사 중이었다. 밥상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라면과 밥 한 덩이, 통에 든 김치가 전부였다. 아저씨는 식사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물건을 건네주었다.
 
“잘 드셔야지. 라면으로 되겠어요.”
 
“괜찮아요.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 뭘.”
 
아저씨가 웃는 바람에 나도 따라 웃었다. 라면이야 먹을 수 있지만, 아저씨의 라면 식사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라 건넨 말이었다. 아저씨는 괜찮다며 걱정해줘서 고맙다 했다. 사실, 내가 도움 준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말로 걱정하는 거야 누군들 못할까.
 
그동안 경비원이 몇 번 바뀌었지만 가장 친절하고 성실한 분이 지금의 경비원이다. 주민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맨손으로 풀을 뽑고 있는 아저씨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아저씨 등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장갑이라도 끼라고 하자, 그러면 풀이 깨끗하게 뽑히지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가 몰래 쓰레기를 버리면 쓰레기 때문에 골치를 앓는 사람도 경비원이었다. 재활용품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던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음식물쓰레기를 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나는 아침 출근길에 아저씨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갔는데 경비실 옆에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전날 비가 내려 도로가 젖어 있었던 탓이다. 그걸 깜빡하고 자전거를 급회전하다 일어난 사고였다. 가방 속 물건들이 튀어나오고 나와 자전거는 널브러졌다.

비명에 놀랐던지 아저씨가 달려왔다. 넘어진 자전거를 세워주며 아저씨는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고마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뒤로 꼬박꼬박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아저씨도 늘 반갑게 웃어주었다. 그런 경비아저씨는 내게 동네 어른 같은 그런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경비원 폭행에 대한 기사를 보면 안타깝다. 경비원을 무시하고 업신 여기고 하대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자신이 얻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루에 두건 이상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하는 게 현실이라니 삭막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분명 세상에는 나쁜 맘을 먹는 사람보다 좋은 맘을 먹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 믿는다. 경비아저씨께 따뜻하게 대하는 분들도 많기에 그렇다. 맹추위가 기세를 떨칠 거라는 올 겨울, 추위를 떨쳐낼 인정과 온정이 넘치는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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