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거니 지켜졌다”
“목숨 거니 지켜졌다”
  • 이명수
  • 승인 2019.01.09 18:34
  • 호수 4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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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일 천막농성, 도보행진, 청와대·광화문 1인시위…사투로 지켜 낸 바다
바다는 어머니 품, 후대들의 생명줄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대상

 

지난 4일 기자가 찾은 가로림만(서산시 대산읍에서 태안군 이원면으로 이어진 바다)은 차가운 겨울바람 말고는 평온했다. 2006년 국가가 추진했던 가로림만 조력댐이 완성됐다면 아마도 지금 가로림만은 생명이 끊어진 죽음의 바다였을 것이다.

자칫 국가적 재앙이 될 뻔한 가로림만을 지켜낸 어업인이 2019년 새해 새삼 주목된다. 그 주인공은 박정섭(61) 전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장이다. 올 연초부터 바다모래채취, 해상풍력발전 등 바다훼손 행위가 또다시 재개될 움직임에 있는데 따라 박정섭씨의 조력댐건설 반대 투쟁사는 바다지킴이의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바다모래채취를 절대 용인해서는 안된다. 조력댐 이상으로 바다를 황폐화하는 행위다. 바다모래를 파면 마치 산과 계곡처럼 웅덩이가 깊게 패이면서 물고기 산란장을 파괴시킨다.”

바다모래채취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보인 박정섭씨는 “어업생산량 감소가 자원남획 탓이라는 이유는 성립될 수 없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바다모래채취 등 각종 바다 난(亂)개발이 절대적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박정섭씨는 가로림만 섬 웅도에서 태어난 천생 어업인이다. 그에겐 평생껏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마치 어머니 품 같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생명줄이라 여겼다. 그래서 바다는 영원히 자연 그대로 남겨져야 하고 그 어떤 침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지론(持論)이었다.
 
하지만 2006년 어쩌면 가장 평범한 그의 지론이 무참히 짓밟히기 시작했다.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 계획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가로림만은 갯벌과 다양한 해양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는 생태적 건강성이 최고인 바다로 평가받고 있었다. 해안선만 160여km에 이르고 풍부한 수산자원을 지닌 이 천혜의 바다에서 지역 어업인들이 생계를 유지해왔다. 13개 어촌계 3000여가구 어업인들이 바지락, 굴, 김 양식업과 어선어업 등으로 평온한 삶의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업인들의 삶의 터전인 가로림만에 조력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이 지역에는 일순간 엄청난 충격과 공포가 몰아닥쳤다. 어업인들은 생계를 걱정하면서 살길 찾기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로림만 조력발전 사업은 충남 서산시 대산읍 벌천포해수욕장 일원과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 일원의 바다를 막아 잇는 조력댐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이었다.
 
2006년 조력댐 건설 계획이 수립되면서 박정섭씨의 고단한 국가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 싸움은 2014년까지 장장 8년이나 계속됐다. 끝내 가로림만을 지켜낸 인간승리였지만 그에겐 정상적인 삶을 상실한 아픔의 시간이었다.
      
박정섭씨는 당시 도성어촌계장을 맡으면서 삶의 터전인 가로림만을 지켜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 싸움에 나섰다. 자신은 물론 지역 어업인들의 생계를 앗아가게끔 가만히 지켜볼 수 만 없었기에 당당하게 국가와 맞섰다.
 
박정섭씨는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장도 맡으면서 조력댐 건설 반대운동의 중심에 들어섰다.
 
박정섭씨는 자신과 어업인들에게 생명줄이자 어머님 품인 바다를 떠나선 살 수 없다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배운 것이라고는 고기잡는 일 밖에 없는 그로서는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바다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투는 2007년부터 187일동안 서산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과천에 있었던 정부청사를 6박 7일동안 걸어갔다. 산자부, 환경부 장관 면담을 요청하면서까지 조력댐 건설의 부당성을 알리는데 혼신을 다했다.
 
박정섭씨는 “당시 장관 면담은 거부됐지만 환경부 차관을 만나 조력댐 건설이 무서운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걸 주체할 수 없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박정섭씨는 환경평가위원회 등 조력댐 사업과 관련된 회의나 위원회들은 모두 개발허용위원회 같았다며 사방에서 무거운 무게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지역구 국회 변웅전 의원을 통해서도 바다를 막으면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으며 제발 어업인들을 살려달라고 읍소했다고도 했다.
 
2012년에는 세종으로 이전한 정부청사로도 6박 7일의 도보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청와대와 광화문에서도 그의 항쟁은 계속됐다. 2013년 이순신 복장으로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8박 9일동안 청와대까지 걸어가 1인 시위를 벌였다.
 
그의 투쟁일지는 계속 적혀져 갔다. 세종시에서 차량에 천막을 치고 3개월동안 농성을 하면서 조력댐이 건설되면 죽음으로 응징하겠다는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의 결연한 각오로 싸웠다.
 
반대투쟁을 하면서 용역조폭으로부터 집단폭행 당했으며 선물을 가장한 뇌물로 온갖 유혹을 받았지만 그의 지론은 결코 변함이 없었다. 박정섭씨가 2009년 4월 공청회장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일이다. 문병온 조력댐 건설 반대 시민단체 지지자들이 “이제 우리가 졌다”고 말하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결코 지지 않았다”면서 환자인 자신이 되레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박정섭씨가 조력댐 건설을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바다나 수산전문가도 아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나 경제적 논리가 사람의 생명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일 따름이라는 것이었다.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로 인한 폐해도 상당했다. 해수교환율 저하로 가로림만 어장이 수장된다. 어업인들의 삶의 터전이 고스란히 사라진다. 조력댐 물대포 효과로 선박운항에 피해가 발생하며 어선 전복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 강력한 물살은 침식과 퇴적이 빈발해 가로림만 개벌과 내·외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
 
가로림만은 점박이 물범의 이동경로다. 겨울을 중국 발해만에서 보내고 4~10월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 예정지 안쪽에 와서 서식하는데 조력댐은 이 통로를 막아버린다.
 
무엇보다 조력댐 건설계획으로 어업을 천직으로 아는 어업인과 보상을 바라는 어업인들 간 갈등을 부추겼다.
 
박정섭씨는 이와 관련 “어느 정도 갈등이 봉합되고 치유는 됐지만 그 후유증은 남아있는 상태”라면서 “국가나 지자체가 어업인들의 아픔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노력을 배가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업인을 영웅이라 칭한다. 바다를 지키며 먹거리 수산물을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게 바로 영웅이란다. 어업인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는 그는 어업인들의 삶의 터전이 빼앗겨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영웅들을 위해서도 가로림만이나 우리바다는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바다를 보면 배가 부르다는 박정섭씨는 간척사업으로 어장이 상실된 새만금, 천수만 등을 복원하고 살려내는데 관심을 둘 계획이다.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사업 재시도에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바다모래채취, 해상풍력발전도 절대 반대다. 바다에 어떤 구조물도 설치해서는 안된다는 그는 자연과 생태를 거역하는 행위는 반드시 재앙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란다. 선진국인 일본도 바다 구조물을 철거하는 복원이 추세다.
 
서해바다에 물고기가 없어지는 이유는 남획이 아니라 산란장인 기수지역(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해역)이 바다개발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개천에서 강, 바다로 이어지는 물의 소통이나 흐름을 인간이 차단하면 바다파괴는 당연한 산물이라는 걸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섭씨는 “먹고 살 바다와 어장이 없어지고 있는 마당에 현재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귀어귀촌사업은 모순덩어리”라고 꼬집었다.

어업인 박정섭씨의 목숨을 건 가로림만 반대투쟁은 2014년 일단 끝이 났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건설사업은 2006년 가로림조력발전(주)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됐고 2014년 11월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 유효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사업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백지화됐다.

박정섭씨 등 가로림만을 살리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8년에 걸친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어촌사회 갈등이라는 후유증은 적잖았다.
 
이제 가로림만은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이라는 또다른 변신을 맞고 있다. 국가해양정원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해양생물보호구역인 가로림만 조력댐 건설사업의 아픔을 딛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힐링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박정섭씨는 “이 역시 자연을 훼손하는 사업으로 전락돼서는 안된다며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생태계를 훼손하고 지역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되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어업인 박정섭씨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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