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문화마당 책 소 개
수협 문화마당 책 소 개
  • 수협중앙회
  • 승인 2018.08.09 13:45
  • 호수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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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진리가 있다. 인류가 축적한 방대한 지식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손에 잡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또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간들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에 본지는 어입인과 수협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문화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엄선된 다양한 책 등을 소개한다.

바다의 끝

 -저  자  김부상 - 출판사  전망
 

■ 바다를 그리워하는 자의 바다이야기

선장이 되고 싶었지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가장의 무거운 책임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서독 탄광의 막장으로 향했던 덕수라는 사람이 있다. 지난 2014년말 개봉해 역대 3위의 흥행기록을 남긴 영화 국제시장 속 주인공이다. 국제시장은 파란만장한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펼쳐 놓고 1462만명의 눈시울을 붉혔다. 역대급 흥행을 계기로 파독 광부의 삶도 새롭게 재조명 됐다.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역만리에서 가난한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숭고한 애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급기야 영화 개봉 후 얼마 되지 않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예우하고 지원하자는 법률이 입법 추진될 정도로 반향은 컸다.

<바다의 끝>은 파독 광부나 간호사보다도 20배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조국 경제발전에 디딤돌을 놓았던 원양선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대양을 누비던 도중 순직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 영면한 원양선원들의 묘가 수백기에 이를 정도로 이들의 삶은 위험 그 자체였다. 그와 같은 희생 위에 벌어들인 외화는 한해 국내 총수출액의 5%를 상회하기도 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벌어들인 외화를 환산한 경우 1.8% 가량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이처럼 큰 희생을 무릅쓰고 조국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했지만 알아주는 이들은 거의 없다. <바다의 끝>을 읽던 내내 4년 전 영화가 뇌리에서 계속 맴돌며 마음 한켠을 무겁고 안타깝게 만든 이유였다.

소설은 1966년 북양 조업에 도전했던 삼양수산의 실화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이 손바닥 뒤집듯 위태롭게 오가는 바다에서의 일상을 차분하고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바다를 개척하려는 소설 속 인물들 앞에는 고난과 좌절이 거듭된다. 북양을 도전하는 한국을 경계하는 일본은 연료 보급을 위한 선단의 기항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모선의 냉동시설 고장을 수리하기 위한 상륙조차 거부당하는 등 크고 작은 난관이 겹치면서 항해는 지체되기만 한다.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으로 북양으로 나가지만 이내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격랑에 휩쓸리고 결국 두척의 배와 29명의 선원을 잃는 비극을 맞는다. 겨우 살아남아 두려움과 공포를 추스르는 선원들 앞에 선단의 사장이 나타난다. 사장은 망연자실한 선원들을 다시 북돋아 일으켜 세웠고 배에서 도망치듯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던 선원들은 다시 한번 북양에 도전하기로 생각을 바꾸고 바다로 향한다. 마침내 주인공 현수의 배는 그물이 터질 듯 잡히는 북양의 풍부한 자원을 목도하고 환호하기에 이른다. 비로소 희망이 보이는가 싶었던 이야기는 다시 한번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좌초된다. 사장이 선단 출항 직후 돌연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이 타전된 것이다. 선단 본사에서는 회항 결정을 내리고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북양조업 시도는 비극적으로 끝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실제 모티프가 된 기업 삼양수산은 이후 전열을 가다듬고 한차례 더 북양 출어를 시도했지만 또 다시 실패를 맛보고 결국 다른 회사에 인수되며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삼양수산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다면 북양에 그토록 엄청난 자원이 있다는 것도 그곳의 사정과 기후, 적합한 선박 등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자신의 항해가 실패였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앞서간 발자국이 되었고 그 뒤를 따라 쉼 없이 이어진 도전들이 북양의 문턱을 낮췄다.

그리고 마침내 황금어장 알래스카와 베링해로 향하는 길이 열리며 원양산업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국가경제를 도약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현수가 실패라고 낙담하기 보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했을 일이다. 돌이켜보면 결국 그가 닿았던 곳은 바다의 끝이 아닌 희망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바다의 끝> 주인공 현수를 포함해 대다수 원양선원들은 자신의 삶이 그들의 삶이 애국이라던가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한 담론에 잇닿아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터다.

영화 국제시장 속의 덕수도 마찬가지다. 단지 돈이 필요하고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을 뿐이고 어선과 막장은 그 이유로 택한 일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살던 시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났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나라와 후손을 위해 큰 희생을 감내하고 헌신했음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양선원들이 이룩한 성과와 공헌은 여전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국민들로부터 재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뱃놈’이라는 낮춰 부르는 표현으로 업신여기는 부정적 인식만 여전하다. 동명의 표제작을 시작으로 수바의 동쪽 등 다섯편의 단편이 담겨있는 <바다의 끝>에는 바다에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담담하지만 생생하게 녹아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위 ‘뱃놈’이라 부르기엔 자신의 입이 차마 민망해질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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