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머리 어촌계 정책, 이제 그만 둘 때다
책상머리 어촌계 정책, 이제 그만 둘 때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8.08.09 13:45
  • 호수 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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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요즘 TV에서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 어촌살이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수산업과 관련된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귀어·귀촌 정책을 주요 수산정책으로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귀어·귀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어촌계에 대해 부정적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귀어희망자가 어촌계의 텃새로 귀어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데 소위 ‘진입장벽’이 높아 정부정책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귀어자의 어촌계 가입이 용이하도록 ‘수협법’을 개정하는 안을 마련했다. 이 안의 기본 골자 중 하나는 해당지역 지구별수협의 조합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촌계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 개정을 통해 어촌계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본 것으로 이 결과가 얼마나 어촌계와 어촌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촌계에는 수협의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공존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수협의 어촌계에 대한 지도·감독 의무는 자연 소멸된다. 왜냐하면 수협은 조합원에 대한 지도·감독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비조합원이 존재하는 어촌계를 지도·감독을 해선 안 된다. 즉 지구별수협과 어촌계는 상호 독립적인 어업인 조직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 개정안의 핵심 문제다. 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살펴보자.

첫째, 수협과 어촌계의 관계가 독립적으로 변화하게 되므로 ‘수협법’ 내에서 어촌계를 다루는 것은 맞지 않게 된다. 즉 이것은 단순히 기존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는 법체계상 맞지 않기 때문에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둘째, 어촌사회의 입장에서는 조합원에 대한 수협의 지원 등으로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이 쌓인다면 결국 어촌사회가 붕괴될 수 있는 위협이 된다.

셋째, 어촌계 지도 감독에 대한 의무를 전적으로 지자체가 가지게 되는데 지자체의 한정된 인원으로는 업무량 급증으로 제대로 된 업무수행이 어렵다. 전국 2000여개의 어촌계만을 지도·감독하기 위한 별도의 인원을 채용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와 지자체 간 충분한 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넷째, 실질적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법률만 개정한다고 해서 어촌계의 문호가 개방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촌계의 폐쇄성은 어촌계 제도보다는 어촌계 구성원의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촌계원 가입에 대한 의사결정 구조를 변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번 정부의 수협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과연 이렇게 ‘예상 가능한 문제’들을 모르고 진행되었을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민원들에 대응하기 위한 면피용 움직임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촌계의 본질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결과일 것이다. 한마디로 책상머리에서 나온 정책이다. 지금은 어촌계의 폐쇄적 분위기를 해소하고 ‘열린 어촌계’를 만들기 위해 법 개정보다 더 근본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때다. 정부-지자체-수협-어촌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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