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기고_이현주 여행전문기자
수협기고_이현주 여행전문기자
  • 수협중앙회
  • 승인 2018.07.26 12:53
  • 호수 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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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존중하라

나에게 있어 음식은 일상의 즐거움이다. 음식을 먹는 일도, 만드는 일도, 심지어 찾아 떠나는 일도 모두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음식이 두려움이었던 순간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한 지역 방송사의 주말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침체되었던 수산물 소비를 높이기 위해 기획된 방송으로 제철 수산물과 함께 어부들의 밥상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었다.

방송이 시작된 후 매주 제철 수산물을 찾아 동해, 서해, 남해를 두루 돌아다녔다. 배 위에서 갯벌에서 때론 섬에서 바다의 맛을 캐냈다. 더불어 제철 재료에 어부들의 손맛이 더해진 어부들의 밥상도 맛볼 수 있었다. 당시 이런 말을 되뇌곤 했다. ‘난 참 운이 좋구나! 이 프로그램은 신이 주신 선물이구나…’ 라고.

하지만 그 선물은 이내 커다란 두려움을 몰고 왔다.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후 프로그램 마지막 코너에서 내가 게스트로 출연한 셰프들과 요리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PD님과 작가님은 ‘못해도 괜찮다’,‘라면만 끓여도 된다’ 하셨지만 매번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마음의 부담은 천근만근이었다. 특히 내 요리의 서투름으로 인해 스태프들의 분주한 시선이 나에게 향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히도 방송을 거듭할수록 요리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고 음식 맛은 나아졌다. 이유는 하나였다. 산지에서 직접 잡아오거나 바로 캐온 재료들로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재료가 신선하니 손맛이나 양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날로 먹어도 맛있는 싱싱한 수산물에 아주 살짝 양념을 더하니 말 그대로 꿀떡 넘어가는 맛의 마술이 펼쳐졌다.

방송을 하며 내가 찾은 몇 가지의 초간단 레시피가 있다. 지금이 제철인 멍게와 성게로 만드는 요리다. 방송을 하기 전까지 난 멍게라는 재료에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멍게를 익혀 먹는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허나 방송을 통해 열을 가한 멍게를 맛 본 후 익힌 멍게요리 마니아가 됐다. 멍게는 데침회를 하듯 뜨거운 물에 살짝 담그기만 해도 그 맛과 향이 새로워진다. 멍게 특유의 그 찡~한 향이 부드럽게 변하고 식감 또한 익힌 강도에 따라 버섯이나 조갯살처럼 변화한다. 그리고 멍게를 데친 육수엔 무엇을 해도 맛있다. 특히 라면을 끓이면 말 그대로 바다 향으로 충만한 해물라면이 완성된다.

이 멍게 데침회와 라면으로 난 지인들과의 캠핑에서 투뿔(투플러스)한우를 이겼다. 멍게로 초간단 볶음밥을 만들 수도 있다. 베이컨을 구운 후 그 기름에 멍게를 잘게 썰어 볶아 보자. 육고기와 물고기가 어우러진 향은 먹기도 전에 만족스럽다. 여기에 논에서 자란 쌀알을 넣고 노릇노릇해질 때 까지 볶으면 고소하고 향긋한, 그러면서도 조화로운 볶음밥이 완성된다. 

지금이 제철인 성게 또한 다양하게 즐기게 됐다. 성게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소스로 만들어 먹으면 보다 다양한 요리에 성게의 향을 더할 수 있다. 다음의 두 레시피는 같이 방송에 참여했던 청강산업대학 노재승 교수에게 배운 레시피이다. 먼저 성게와 마요네즈를 1:1로 섞은 후 뜰채에 한번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소스에 부드러움이 배가 되는데 여기에 천혜향이나 오렌지 등의 상큼한 과즙을 더하면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는 멋진 소스가 만들어진다. 매콤한 요리에도 튀김 요리에도 어울리는 소스다.

초간단 한치구이 양념도 있다. 올리브오일과 고추장을 2:1로 섞은 후 설탕을 한 꼬집 넣어 소스를 만든다. 이 양념에 한치를 버무린 후 프라이팬에 거뭇거뭇해질 때까지 볶으면 간단하면서도 근사한 술안주가 탄생한다. 이 양념에는 오징어도 새우도 어울린다. 10년 전 파리에서 미슐랭가이드북에서 두 개의 별을 받은 ‘장 프랑수와 피에주’ 셰프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이 있다. ‘요리사란 신선한 재료와 좋은 관계를 완성시키는 사람이에요’.

요리의 세계는 넓고도 다양하다. 여전히 요리는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싱싱한 제철 수산물로 요리를 해본다면 요리가 조금은 더 친근해질 것이다. 제철 해산물의 맛은 정말 정직하고 완벽하기 때문이다. 기교 보다는 정석, 화려함 보다는 맛에 중점을 둔 제철 해산물 요리를 위해 난 오늘도 수산물 시장으로 간다. 여전히 음식은 나에게 일상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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